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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으로 들려준 산조의 정수, ‘긴산조 협주곡’[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9일에서 10일,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기획 공연 ‘긴산조 협주곡’이 펼쳐졌다. 이태백류 아쟁산조와 원장현류 대금산조 전바탕이 협주곡으로 초연된 무대로, 자신의 이름으로 산조를 만든 이태백 명인과 원장현 명인이 직접 협연하였다. 이전에 연주되던 보통의 산조 협주곡들은 12분 내외의 짧은 산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나, 산조의 원형, 정수라 불리는 긴산조를 국악관현악과 함께 협주곡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산조는 19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기악 독주곡으로, 느린 장단으로부터 빠른 장단으로 연주하는 민속음악의 한 갈래다. 긴장과 이완의 대비 속에서 연주자의 기교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곡으로, 3∼6개의 장단으로 구성되며 반드시 장구 반주가 따른다. 이에 이번 무대에서도 고수 김태영과 고수 윤재영이 독주자들과 함께 자리하여 반주하였다. 또 이정호 작곡가와 김백찬 작곡가가 각각 ‘이태백류 아쟁산조’와 ‘원장현류 대금산조’ 협주곡을 맡아 위촉하여 서로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이태백류 아쟁산조’는 이태백 명인이 스승 박종선 명인과 김일구 명인으로부터 배운 것을 모체로 자신만의 해석을 더 해 녹여낸 결과물이다. 각각의 아쟁 산조가 지닌 색채가 독특하고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는 이태백류 아쟁산조. 그 가락을 위해 만들어진 ‘이태백류 아쟁산조 협주곡’이 첫 무대로 열렸다. 화려한 타악기와 태평소 소리의 웅장함과 함께 관현악의 힘 있는 합주 안에서 진양조장단이 시작됐다. 이태백 명인의 애절하고도 힘 있는 선율에 맞추어 가야금과 거문고 등의 발현악기가 마치 장단으로 반주하듯 효과를 주었고, 다른 악기들도 아쟁 독주에 방해되지 않게 서서히 연주되기 시작했다. 악기군별로 나뉘어 관악기와 현악기가 각각 따로 연주된 구간이 특히 많았는데, 이를 통해 국악기의 특색있는 사운드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태백 명인의 아쟁산조는 단정하고, 깔끔했다. 길게 음을 뻗어 내거나 농현을 할 때에 흔들리지 않는 활의 길이 명확했고, 그 안에서 공력이 묻어났다. 보통의 공연에서는 상대적으로 짧은산조가 더 많이 연주되기에 긴산조를 들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익숙지 않은 아름다운 아쟁 선율을 다양하게, 그리고 길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긴산조에는 힘 있게 뻗어내고, 높은음을 연주하는 구간이 많았다. 이때 국악 관현악이 극적이고 다이내믹한 효과를 함께 반주해 주어 더 효과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계면조의 엇청(본청의 4도 위 음)이나 꺾는음 등이 도드라지는 진계면 구간에서의 관현악은 서정적인 베이스라인과 함께 감정적인 효과를 내는 데 일조했다. 또 반음계를 반복하거나, 상·하행 진행을 활용하여 음악을 발전시키고 극적으로 그려낸 구간이 많았다. 하지만 아쟁 산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분위기만을 자아내, 산조의 틀을 잃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다. 아쟁산조 협주곡을 작곡한 이정호 작곡가는 작품의 구성에 대해 "서주와 각 장단 초반부는 초기 산조 협주곡 양식을 비중 있게 도입해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사운드를 만들었다”며, 산조를 방해하지 않고 산조 특유의 시김새와 호흡을 그대고 갈 수 있도록 산조의 배경처럼 받쳐주었다고 전했다. 아쟁 산조의 원형을 깨뜨리지 않고 산조 뒤의 배경이 되어주려는 작곡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높은 청에서 진계면으로 연주된 산조의 구간은 굉장히 애잔하고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다. 더 이상 울 힘도 없어 눈물도 나지 않고 헛헛한 신음만 나올 정도로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흐트러짐 없고 연륜이 묻어나는 깔끔한 아쟁 산조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진양조는 대부분 계면조로 이루어졌지만, 중모리장단부터는 힘 있고 거침없는 평우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깔끔했고, 동시에 단단했다. 중중모리장단에 이르자 힘 있는 활의 길은 더욱 탄탄해졌고, 장단이 빨라져도 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견고했다. 급하지 않고 힘 있으면서도 평온한 여유가 이태백 명인의 연주에 묻어났다. 관객들은 숨죽여 그의 완성도 높은 연주와 풍성한 관현악에 숨을 멎은 채로 흠뻑 빠져 있다가, 푸는 가락에 이르러 탄성과 추임새를 내뱉었다. 흡입력 있고 빛나는 무대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15분간의 휴식 후, 원장현류 대금산조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원장현류 대금산조는 원장현 명인이 판소리와 여러 악기에 능통했던 한일섭 명인에게 구음으로 사사한 대금산조 가락을 자신만의 세계로 구체화해 만들어졌다. 아쟁의 낮고 힘 있는 소리에 이어 관현악의 날카롭고 웅장한 합주로 무대가 시작됐다. 앞서 연주되었던 아쟁 협주곡의 관현악은 깔끔하고 민속적인 색채가 강했다면, 대금 협주곡은 화려하고 대중적이었다. 마치 오페라의 서곡(Overture)이 연상되듯 극적이었으며, 다이내믹하고 서정적인 선율이 반복적으로 연주되었다. 마치 영화 음악 같은 분위기 속에서 대금의 진양조장단이 시작되었다. 아쟁의 베이스라인이 중심이 되어 어두우면서도 웅장한 이미지를 연출해 냈고, 대금의 편안하고 견고한 소리가 아름답게 얹혔다. 원장현류 대금산조 협주곡을 작곡한 김백찬 작곡가는 작품에 대해 "독주 선율에 내재한 감성과 표현을 최대한 원곡의 느낌으로 잘 살려 표현해 보고자 했다”며, 무엇보다 한 장단 한 장단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들리도록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 덕분인지 대금 산조가 입체감 있는 하나의 시각적 예술처럼 어떠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듯했다. 중모리장단에서의 도입부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관현악의 선율이 마치 한 편의 사극 같았고, 그 위에 대금 산조가 얹어지니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독특한 색채로 감상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관현악 선율과 코드 진행이 곡을 끌어가다 보니, 대금 산조의 선율이 상대적으로 잘 들리지 않고 묻혔다는 점이다. 또 산조의 기본이 되는 ‘조’의 음계나 색채가 서양 음악적 코드 진행의 여파로 그 매력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대중적이고 입체감 있던 분위기는 좋았으나, 대금산조의 원형과 고유한 매력에 집중하여 민속악적 색채를 더욱 보여주었더라면 더욱 균형감 있는 곡이 되었을 것 같다. 중중모리장단이 시작되고 연주된 화려한 태평소와 타악기들의 강하고 화려한 소리는 행진곡을 방불케 했다. 특히 스네어 드럼(Snare Drum)의 소리가 국악관현악과 묻어나니 신선한 느낌을 자아냈다. 리듬 형태는 중중모리장단에 맞추면서도 독자적이고 새로운 형태로 연주되어 독특하게 느껴졌다. 대금 연주는 장단이 빨라질수록 더욱 힘 있고 견고해졌다. 청이 높든, 낮든 어느 구간에서도 흔들림 없이 연주한 원장현 명인의 소리에는 오랜 세월 대금과 함께한 깊은 공력이 묻어났다. 호방하고 유려한 청소리와 푸는 가락에서의 깊이 있는 표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긴산조’는 모든 장단을 아우르는, 말 그대로 산조의 원형이자 민속음악의 꽃이다. 이번 창작악단 기획 공연으로 진행된 ‘긴산조 협주곡’에서는 오랜 시간 국악의 가계에서 자라나 일가를 이루고 자신의 이름으로 산조를 만든 두 명인의 산조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국악 관현악이 채워주는 색다른 풍성함이 곁들여지고, 장단의 변화에 맞추어 긴 호흡으로 연주되었기에, 연주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 흐름 속에 흠뻑 빠져 우리 음악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 더욱 의미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로비는 상기된 표정으로 ‘참 좋았다’며 이야기하는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혹여 긴 시간 동안 연주되는 산조가 관객들에게 너무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을지 미리부터 걱정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무대였다. 이번 새로운 시도를 계기로 산조의 뿌리가 더욱 깊게, 그리고 멀리 뻗어져 나가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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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 시나위가 그려내는 ‘고요의 바다’[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봄 향기가 가득한 5월의 첫날,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우리 정서를 찾아 나서는 앙상블 시나위의 콘서트 ‘고요의 바다’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펼쳐졌다. 앙상블 시나위는 경계 없는 작품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창작 팀으로, 우리 음악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 등을 통해 꾸준히 음악을 발표해 오고 있다. ‘고요의 바다’는 인류가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이자 우주 적막한 공간의 일부인 달 표면을 뜻한다. 이들은 인류가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탐험하는 것처럼, 희망의 미래를 발견하기 위해 그들만의 시공간을 음악으로 만들고자 무대를 꾸렸다. 공연에는 '앙상블 시나위'의 대표인 아쟁 신현식을 비롯해 가야금 박순아, 바이올린 허희정, 피아노 정송희와 사물놀이의 창시자 김덕수, 소리꾼 정혜빈과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타악기 연주자 강선일이 함께 했다. 앙상블 시나위는 공연마다 전통의 변용과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작품을 발표해 왔다. 이번 무대에서는 향가의 함축적인 시와 풍류의 정제된 음악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적인 해석을 통한 자유로운 곡을 연주했다. 그들은 고전의 향가(鄕歌)를 바탕으로 장단 위에 각각의 악기가 각기 매력적인 소리를 만들어 내며, 앙상블 시나위만의 현대음악적인 요소를 강하게 드러냈다. 무대에는 자욱한 드라이아이스가 공간을 뿌옇게 감싸고 있었다. 조명이 어두워지는 동시에 천천히 신스(Synth)계열의 낮은 전자 베이스 사운드가 어둡고 풍성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정종의 맑은소리와 함께 가야금의 반복적인 리듬 형태가 연주되었다. 첫 곡 ‘그믐’이 연주되었다. ‘그믐’은 가장 어두운 때를 밝혀주는 달인 그믐달을 나타낸다. 하나둘 들어온 악기들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연주로 어둡고 지친 삶을 위로 해 주었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전통음악 어법이 도드라졌는데, 굵게 떠는 농현을 흉내 낸 비브라토와 끌어 올리고 끌어 내리는 추퇴성 기법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한국적인 멋을 자연스레 표현하였다. 특히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곡이니만큼 곡의 마지막 구간에서는 종묘제례악 정대업 중 ‘영관’ 마지막 부분을 차용하여 태평소가 독주로 연주하는 선율을 바이올린이 연주하고, 아쟁이 그를 받아 타악기 파트의 리듬 형태를 저음으로 뜯으며 연주했다. 전통음악 요소를 자연스럽게 넣는 시도와 더불어 현대적이고 서정적인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다채로운 색채를 드러냈다. 곧 이어 경쾌한 타악기 리듬과 함께 초연곡 ‘해량’이 연주됐다. 향가 ‘처용가’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으로,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을 다이내믹하게 그려냈다. 장구와 타악기는 함께 같은 리듬을 연주했고, 아쟁과 바이올린은 활을 치는 기법 등을 통해 그 리듬 형태를 함께 연주하고 발전시켰다. 선율은 도리안(Dorian) 선법을 활용하여 장조의 밝음과 단조의 슬픈 느낌 사이의 자유롭고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 형태를 듣고 있자니, 아르헨티나 작곡가인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음악이 떠오르기도 했다. 곡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다 함께 칠채 장단을 연주하고 휘모리장단으로 강렬하게 변화하며 앙상블 시나위만의 조화롭고 수준 높은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세 번째 곡 ‘초혼’은 떠난 이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새기며, 진도씻김굿의 노래와 현악기의 살풀이가 함께 그리움을 부르짖었다. 죽은 누이에 대한 제(祭/추모)를 지내는 노래인 향가 ‘제망매가’를 모티브로 한 이 곡은, 바이올린과 아쟁, 가야금이 주가 되어 끌어 나갔다. 곡의 처음과 마지막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서정적이고 슬픈, 현대적인 가요 스타일의 선율을 연주했고, 중간 구간은 시나위 형태로, 각 악기가 화려하게 장단을 타고 놀며 솔로 연주를 선보였다. 특히 아쟁의 울부짖는 듯한 계면조 솔로 연주는 망자를 그리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이때 가야금도 함께 아쟁의 솔로 연주를 받쳐주며 강렬하게 함께 연주해 풍성하고 감정적인 다이내믹을 표현하였다. 현악기의 자유로움과 우직한 장단이 균형 있게 합쳐지니 조화롭고 감성적인 슬픔이 더욱 드러났다. 초연곡 ‘파랑가’는 고조선의 서정 가요 ‘공무도하가’와 제주도 민요 ‘이어도사나’가 합쳐진 곡으로, 떠나보낸 임들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다. 섬에 갇혀버린 현대의 우리를 꺼내어 길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탄생했다는 이 곡은, 소리꾼 정혜빈의 소리가 덧입혀져 더욱 풍성한 무대를 만들어 냈다. 전통 노래를 기반으로 하지만 현대적으로 풀어낸 담백한 가사가 친숙하게 다가왔고, 서정적이면서도 화려한 악기 반주는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풍성하게 해 주었다. 곡이 점점 발전돼 갈수록 소리꾼의 노래는 현대 가요 스타일에서 전통 소리 스타일로 변화해 나갔다. 대중성과 전통성이 자연스레 얽혀 들어가게끔 하는 앙상블 시나위의 음악적 스타일이 더욱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어 연주된 두 곡 ‘길을 쓰는 별’과 ‘헌화지곡’은 각각 가야금과 아쟁, 바이올린과 장구의 듀오 연주로 진행됐다. ‘길을 쓰는 별’은 내레이션 위에 가야금과 아쟁의 효과음이 덧입혀지며 이야기 극처럼 시작했다. 가야금은 빠르고 화려한 아르페지오 선율을 반복적으로 연주했는데, 사단조(G minor)와 바장조(F major)를 번갈아 가며 연주하여 묘하고 아름다운 우주의 느낌을 표현했다. 더불어 아쟁은 진하고 깊은 울림과 하모닉스(harmonics, 현악기의 특수한 주법으로, 부드럽고 투명한 음색을 표현한다)나 울렁거리는 활 움직임 등의 기법을 사용해 긴장감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나타내, 두 악기의 음색이 영롱하게 어우러지게끔 하였다. ‘헌화지곡’은 향가 ‘헌화가’를 모티브로 하여, 바이올린과 장구가 함께 연주했다. 앞 곡처럼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된 이 곡은 장구가 연주하는 다스름 장단의 궁편 울림 위에 바이올린의 단정한 선율이 얹어졌다. 장단은 점점 빨라지는 형태로 변화했으며, 빨라질수록 바이올린의 연주도 점점 자유롭고 화려해졌다. 바이올린은 장단 안에서 중음기법(인접한 두 개의 현을 누른 상태에서 활로 두 현을 동시에 그어 연주하는 기법)으로 화음을 내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고음을 넘나들기도 했다. 탄탄한 장단 안에서 서로 호흡을 맞추고, 현대적이며 한국적인 음색을 물씬 드러낸 ‘헌화지곡’은 이 시대의 새로운 산조였다. 마지막 세 곡이 연주되기 전, 김덕수 연주자가 악기와 연주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명 한 명 자세히 소개하고, 관객들과 편안하게 소통함으로 무대를 더욱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동해랩소디’는 아쟁의 강렬한 피치카토(Pizzicato, 발현악기 연주 시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서 발현악기처럼 연주하는 방법)로 시작했다. 시나위적 요소가 강하게 묻어있는 이 곡에서는 악기의 다이내믹한 솔로 연주를 마음껏 들을 수 있었고, 악기 간의 호흡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또 풍성한 사운드로 연주자들의 높은 기량을 현장감 있게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었다. ‘푸가시나위’는 김덕수 연주자의 신명 나는 추임새와 함께 모든 악기의 세고 강렬한 저음부 연주로 뱃고동 소리처럼 시작했다. 선율은 몽환적인 단조 선법과 반음계 등을 활용하여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 마치 스페인 춤곡이 연상되기도 했다. 리듬 형태는 장단을 변형시키거나, 밀고 당기는 기법을 사용해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묘하게 어우러진 신선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평온하고 차분하게 바다를 항해하는 느낌의 ‘초생’을 마지막 곡으로 무대는 끝이 났다. 90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선사해 준 앙상블 시나위 콘서트 ‘고요의 바다’, 무한한 공간 속에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그려냈다. 그들은 ‘향가’와 ‘풍류’를 바탕으로 즉흥성과 우연성, 대중성을 가미하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냈고, 그 연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위로와 떨림, 도전을 선사해 주었다. 오랜 기간 전통을 소재로 계속해서 더 나은 삶을, 더 나은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하는 그들의 음악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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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현 명인, “산조는 우리 삶의 소리”[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은 오는 5월 9일과 1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이태백류 아쟁산조와 원장현류 대금산조 전바탕 '긴산조 협주곡'을 초연한다. 아쟁과 대금의 깊이 있는 매력과 국악관현악의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뜻깊은 무대로 기대를 모은다. 이에 대금연주 명인 원장현 선생을 금현국악원 연습실에서 만나 이번 발표에 대해 들었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년에 뵙고 딱 1년 만에 다시 뵙게 되었네요. 곧 있을 긴산조 협주곡과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드려보려고 합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A. 반갑습니다. 그간 연주자로서 연주에 매진하고, 후학 양성에 힘쓰며 바쁘게 잘 지냈습니다. 연초부터는 동국대학교 석박사 과정 특임교수로 발령받아 강의를 나가고 있고, 공연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곧 있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기획공연에서 할 긴산조 연습에 몰두하고 있죠. Q. 이번 공연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기획공연으로 선보여지는데요, 선생님과 이태백 선생님의 긴산조가 창작악단의 국악관현악과 만나 연주된다는 게 너무 흥미롭습니다. 이번 공연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A. 말 그대로 긴산조를 협연하는 공연으로, 이태백 선생님의 아쟁 협주곡과 제 대금 협주곡 총 두 곡으로 진행됩니다. 저는 원장현류 대금산조 긴산조를 45분간 관현악단 반주에 맞추어 연주하게 될 텐데요, 전통이 근간이 되는 국립국악원이기에 이 무대가 시도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권성택 예술감독의 오랜 바람이자 열정이기도 했고요. 특히 긴산조 협주곡은 이번에 최초로 시도되기에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보통 협주곡의 경우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20분 내외로 짧게 진행되는 편인데, 이번 협주곡의 경우 45분간 연주되어 산조를 아주 전문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곡이 너무 길어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긴산조를 관현악 협연으로 선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 일생일대 큰 기회가 아닌가 싶어요. Q. 김백찬 작곡가의 원장현류 대금산조 협주곡은 2022년 초연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가지고 만들어진 협주곡은 이전부터 많이 있었으나, 김백찬 작곡가의 협연 곡은 2022년 전북도립국악원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그때는 짧은산조로 20분 정도 짧게 연주되었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긴산조의 선율을 가지고 곡을 늘려, 더욱 풍성한 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Q. 짧은산조 버전의 협주곡과 긴산조 협주곡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짧은산조는 긴산조를 축약하여 짧게 보여준 산조입니다. 긴산조는 산조 장르의 원형이자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이 있죠. 짧은산조 버전의 협주곡은 20분 안으로 연주가 끝나기에 연주자로서 체력적인 소모도 덜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짧고 임팩트 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긴산조 협주곡의 경우 ‘산조’의 멋을 그대로 다 느껴낼 수 있기에 긴 호흡으로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매력으로 작용할 것 같네요. 지금껏 협주곡을 수없이 많이 연주해 왔지만 4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주하는 건 처음입니다. 물론 최초이기도 하고요. 좋은 무대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Q. 김백찬 작곡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 곡을 준비하셨을 것 같은데요, 관현악의 경우 대금산조와 어떻게 어우러지도록 고민하셨나요? 선생님께서 연주하신 짧은산조 영상을 감상 해 보았는데, 관현악에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코드 진행이 많이 녹아있어 감성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A. 보통의 산조 협주곡은 산조답다고 해야 할까요? 독주 악기의 민속적 선법이나 선율을 따라 비슷하게 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데 김백찬 작곡가의 곡은 달라요. 감성적이고 친숙한 선율이나 코드 등이 활용되어서 대중적입니다. 그게 참 마음에 들어요. 관현악이 대금 선율을 감싸주며 풍성하게 만들어주니 훨씬 들을 거리가 많은 느낌이거든요. 아무리 좋은 보석도 어떻게 포장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 보이지 않겠어요? 물론 그 안에서 대금산조의 원형은 살아 있어야 하기에 나는 내 산조의 이야기를 확고하게 하며 연주할 것이고요. Q. 산조 협주곡이 이렇게 길게 연주되는 시도 자체가 처음인 거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클래식 교향곡 전 악장 길이와도 비슷한데요, 산조가, 그리고 긴 러닝타임이 어색하고 어려운 관객도 있을 것 같아요. 이 공연을 어떻게 관람하면 좋을까요? A. 산조는 인간의 소리, 우리 삶의 소리입니다. 처음엔 익숙지 않아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결국 우리 음악이기에, 차분히 열린 마음으로 듣다 보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45분 동안 연주하는 저도, 그리고 듣는 관객분들도 큰 집중력이 필요하겠죠? 산조의 틀은 어떤 악기가 연주하든 같습니다. ‘산조’라는 장르 안에서 악기 고유의 매력을 각각 표현하는 거죠. 그중 대금산조는 특히 대나무로부터 나오는 소리가 참 매력적입니다. 그 소리 자체에 집중하여 감상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Q. 이번 공연 이후, 올해 또 계획하고 계신 공연이나 작업이 있나요? A. 8월 말이나 9월 초에 원장현류 긴산조 독주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관객들과 편안하게 소통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소박하고 작은 공간에서 진행하게 될 것 같아요. 또 국악협회에서 주최하는 공연이 있어 곧 오사카에 가고, 진도 국악고등학교에 가서 대금산조를 잘할 수 있는 법에 대해 특강도 할 예정입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연습과 후학양성도 꾸준히 할 것이고요. Q.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올 분들께 한마디 해 주세요. A. 국악은 우리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당하는 장르로 치부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음악을 우리나라 국민이 아끼고 사랑해 주지 않으면 그 역사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나라에서 한식을 먹고, 한글을 쓰듯이 우리 음악도 생활 속에서 관심을 갖고 감상해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와 닿을 것으로 생각해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처럼, 국악을, 그리고 산조를 그저 어렵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있는 그대로 즐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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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만나 보는 '제94회 남원춘향대전'[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로 손꼽히는 남원춘향대전(남원춘향제)이 오는 5월 10일(금)부터 5월 16일(목)까지 7일간 남원시 광한루원 일대에서 열린다. ‘춘향, Color 愛 반하다’라는 주제로 올해 94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다채로운 콘텐츠와 공연예술 프로그램, 다양한 볼거리를 포함하여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만족도 높은 축제를 지향하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기존에 5일간 진행되던 것을 7일로 늘리며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축제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 하여, 민속악을 중심으로 국악의 활성화에 앞장서는 남원의 대표 전통예술 기관 국립민속국악원 김중현 원장님(남원춘향대전 운영위원장)과 남원춘향대전 총괄을 맡은 이영규 팀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원장님, 팀장님. 이렇게 뵙고 인터뷰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곧 있을 춘향국악대전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요. 그 전에 먼저 원장님과 팀장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 안녕하세요. 저는 국립민속국악원 원장 김중현입니다. 국악원 원장직을 통해 국악 공연과 연구, 교육 사업 등에서 총괄 책임을 맡고 있어요. 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춘향국악대전 운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 안녕하세요. 이번 제94회 춘향국악대전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이영규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맡아 준비하고 있고요, 이제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아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Q- 5월 10일부터 16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제 94회 남원춘향제는 최장수 전통문화축제로 꼽힌다고 들었습니다. 춘향국악대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이-춘향국악대전은 그동안 한 번도 끊긴 적 없는 가장 오래된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일제강점기 시절, 문화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지역민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만든 축제라는 데에도 의의가 있어요. 공연예술부터 다양한 행사나 먹거리 등으로 관람객 모두에게 만족도가 높은 축제입니다. Q- 이번 축제는 기존의 5일에서 일주일로 늘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역대 춘향제와 다르게, 올해 남원춘향제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나 기획도 있나요? 이- 이번 춘향국악대전은 무엇보다 ‘춘향전 속 주인공이 되어보자’는 주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한복을 입고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2월부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복 기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요. 현장에 한복 대여소를 운영 할 예정이라, 관객들이 모두 무료로 한복을 빌려 입을 수 있어요. 직접 가져오셔도 좋고요. 한국의 문화를 맘껏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Q- 춘향전 속 주인공이 되어 모두가 한복을 입을 수 있다니, 정말 색다르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요. 춘향전을 모티브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이- ‘춘향전’의 가치는 ‘사랑’이잖아요. 사랑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고, 춘향의 사랑에는 특히 용기와 헌신, 희생이 드러납니다. 이는 서양의 고전적 사랑과는 또 다른 동양적, 한국적 의미가 도드라져요. 이에 춘향의 사랑을 주제로 하여 보다 세계적인 축제로 확산시키고자 춘향전을 모티브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남원춘향제에서 개최하는 미인선발대회인 ‘글로벌 춘향선발대회’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데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절개를 지킨 춘향의 사랑을 또 다른 K-Culture의 문화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올해는 특히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일본, 캐나다 5개국에서 동시 개최하여 글로벌 축제로써의 한 걸음을 딛어냈습니다. Q- 이번에 국립민속국악원과 춘향국악대전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요. 국악원에서 맡고 있는 공연이나 행사도 있나요? 김- 우리 국립민속국악원에서는 춘향제 초청공연으로 5월 12일, ‘남원에 새봄이 들어’라는 창극을 선보입니다. 총 41명의 단원이 출연하고요,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장원급제한 후 남원에 돌아와 춘향과 만나는 장면을 그려 낼 예정입니다. 춘향국악대전은 공연예술제이기에 남원시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입니다. 우리 국악원도 이에 함께 연계하여 더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Q-국악인들의 축제인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도 빼놓을 수 없겠는데요, 특히 일반부 종합 결선과 판소리 명창부 결선에서는 청중평가단의 평가가 들어가는 것이 독특합니다. 이렇게 일반인 청중을 평가단으로 세우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 청중평가단의 평가를 포함하여 공정하게 꾸려나가겠다는 의지입니다. 춘향국악대전은 오랜 역사와 함께 실력 있는 국악인들이 거쳐 가는 등용문이기도 하죠. 공정한 심사를 위해 먼저 지역 쏠림이 없도록 지역 안배를 합니다. 또 심사위원 검증위원회를 두어, 예술마루에 등록된 심사위원을 최종 선발하게 됩니다. 논란 없이 최대한 공정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Q- 펼쳐지는 공연을 보니, 판소리 춘향가와 전통 음악, 창작 국악, 관현악, 농악을 비롯하며 중국과 일본의 전통 공연까지 진행되더라고요. 역시 전통을 중시하고 사랑하는 남원의 특색이 많이 묻어납니다. 관객들이 국악 무대를 많이 즐기나요? 이- 전통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이기에 더욱 신경 써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남원과 우호 관계를 맺은 중국과 일본의 전통 공연을 초청하여 선보임으로, 국가 간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 것입니다. 또 남원 분들은 귀명창이 참 많으세요. 그래서인지 국악과 전통예술 공연에 늘 관심이 많고 즐겁게 잘 즐기십니다. 김- 맞아요. 추임새도 정말 잘 해주시고, 국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게 느껴집니다. 국악원에서도 토요일마다 완창 판소리를 개최하는데, 남원 관객분들은 그 긴 시간을 늘 끝까지 다 들으시고, 반응해 주시죠. Q- 지역 인구가 소멸해 가고 있고, 도시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 지역 축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성 있는 축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 무엇보다 지역 문화가 활성화되는 게 크겠죠. 외부 관광객들이 이 축제를 통해 남원의 문화를 알게 되고, 관광지를 구경하기도 하며 관광산업이 발전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5월 10일부터 11일,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춘향제 100년, 지역축제 진화와 혁신’이라는 주제로 전문가분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텐데, 그때 지역축제산업과 로컬관광에 관하여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이 축제를 통해 남원이 발전하는 것 외에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자 하는 긍정적 효과가 보입니다. 문제로 대두되던 바가지요금이나 비싼 식품 가격에 대해서도 시에서 개입하여 근절시키고자 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여 더 나은 축제로, 관광지로 만들고자 노력하죠. 남원은 지금까지 체류형 관광지가 아닌 잠깐 들렀다 가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하지만 남원춘향제를 통해 이 지역이 더욱 홍보되고, 주변 상권을 살릴 수 있다면 더욱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될 수 있겠죠. Q- 그 외에 올해 춘향국악대전에서 색다르게 펼쳐지는 행사나 기획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이- 11일부터 12일까지, 주민 4,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형 퍼레이드 공연인 대동길놀이가 펼쳐집니다. 춘향전 속 명장면을 연출하는 퍼레이드형 놀이인데요. 예를 들어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이나 이별,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돌아오는 장면 등을 구성하여 펼쳐냅니다. 자발적인 주민 참여형 커뮤니티를 만들어, 시민이 직접 준비한다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죠. 그 외에도 남원시에서 활동 중인 농악단의 대규모 농악 공연을 광한루에서 매일 볼 수 있다는 것과, ‘판락’이라고 하여 판소리와 락(Rock)의 콜라보 공연, 한복을 입고 하는 EDM 파티, 공군 에어쇼 등 볼거리가 정말 많습니다. Q-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가 참 많은 것 같아 더욱 기대되는 축제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김- 국립민속국악원은 춘향테마파크 안에 있습니다. 그만큼 국악원에서도 춘향 관련 전시나 교육 등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남원에 들르셔서 축제를 즐기고, 그 김에 국립민속국악원도 방문하신다면 더욱 즐겁고 알찬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는 1,500여 개 정도인데요, 보통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게 주가 됩니다. 춘향국악대전에선 먹고 마시는 것 외에도, 한복을 입고 춘향전의 주인공이 되어 조선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색다른 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난장’이라는 야시장을 통해 막걸리 축제를 병행할 예정이에요. 특히 이번에는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와 협업하여 맛있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남원 막걸리와 함께 즐길 수 있으니 꼭 놀러 오셔서 좋은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춘향테마파크와 광한루원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남원은, 어딜 가든 춘향과 몽룡이의 사랑 이야기가 곳곳에 묻어났다. 춘향의 사랑을 주제로 관객 모두가 춘향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춘향국악대전’. 가장 오래된 ‘최초의 지역축제’인 만큼 그 준비 과정 또한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 가치를 드높이고 관객들에게 더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더 나아가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대표 지역축제로써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가 와 닿았다. 더욱 발전하기를 함께 소망하게 되었다. 푸르른 5월, 조선시대로 돌아가 춘향이, 또 이몽룡이 되어 색다르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춘향아 이리와 업고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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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연희극 ‘新칠우쟁론기’[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남산국악당에서 아트플랫폼 동화의 ‘연희 데카당스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모던연희극 ‘新칠우쟁론기’가 펼쳐졌다. 이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에 2022-2024년 선정되어 2023년 초연되었고, 이번 무대에서 내용과 안무 등이 강화되어 새롭게 선보여졌다. ‘新칠우쟁론기’는 조선시대 고전소설 ‘규중칠우쟁론기’를 오늘날 시대상에 맞게 재해석한 국악 가족 뮤지컬이다. ‘규중칠우쟁론기’는 규방의 부인이 바느질할 때 없어서 안 될 일곱 가지 도구를 의인화하여 인간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新칠우쟁론기’에서는 바느질 도구 일곱 가지 대신 노트북과 휴대폰, 명품 가방 등 현대인이 가치 있게 여길법한 소지품 일곱 가지를 대입하여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풀어냈다. 공연 시작 전 객석에서는 밝고 그루비(Groovy)한 연주곡이 배경으로 흘러나왔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의 밴드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중간중간 효과음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판소리가 묻어났다. 이 음악 구성은 무대가 끝날 때까지 전반적으로 끌고 가는 장르로 작용했다. 극이 시작되고, 노란 조명과 드라이아이스 안개 속에 여덟 명의 배우가 나와 진지하고 엄숙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극이 어떻게 펼쳐질지 보여주는 서곡이었다. 이후 천년을 산 하루살이가 사람 몸으로 들어가며 과연 사람의 욕망이란 무엇인지 살펴보자며 본격적인 무대를 열었다. 주인공 나사랑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만대호의 산책로를 걷다가 갑자기 몰아친 돌풍 때문에 소중한 소지품을 호수에 빠뜨린다. 그녀의 소지품은 ‘휴대폰’, ‘노트북’, ‘명품 가방’, ‘반지’, ‘손수건’, ‘화장품’, ‘열쇠’로 총 일곱 가지였다. 나사랑이 그 물건들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소개할 때에 그에 걸맞은 효과음이나 어울리는 음악 장르가 흘러나왔다. 명품 가방을 소개할 때는 사랑스럽고 도시적인 느낌의 시티팝(citypop)과 대중음악이, 노트북을 소개할 때는 일렉트로닉(Electronic)한 전자음악 사운드가 주가 된 현대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상황에 맞게 직관적인 음악을 활용하여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한 연출이 섬세하게 다가왔다. 또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조명이나 효과음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공연은 여섯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연주자(고수), 세 명의 앙상블로 구성되었다. 특히 세 명의 앙상블을 맡은 배우들은 소리꾼들이 소리를 하거나 배우들이 연기할 때 옆에서 그에 어울리는 춤을 선보였는데, 극을 지루하지 않게 유쾌하게 끌어주고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어 마치 이날치 밴드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연상되기도 했다. 무대를 관통하는 음악 또한 밴드 음악 기반에 힙합 비트와 전자 사운드가 주를 이루며 대중적이고 유쾌한, 독특한 효과를 드러냈다. 일곱 가지 소중한 물건을 호수에 빠뜨린 나사랑은 만대호의 2인자인 하수인과 절대 권력 강회장을 만나고, 기존 회사에서 받는 연봉의 열 배를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일곱 가지 물건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요구를 듣게 된다. 이에 나사랑의 일곱 가지 물건은 나사랑에게 선택받고자 각자를 어필하고, 다른 물건들과 다투기도 한다. 원작 ‘규중칠우쟁론기’에서 바느질에 필요한 물건들이 각자의 쓰임새를 뽐내던 것과 비슷한 연출이었다. 상황에 걸맞은 음악이나 효과음이 끊임없이 등장했고, 배우들은 대중적인 단어를 사용하거나 언어유희를 하며 유쾌하게 극을 끌어갔다. 이러한 유머 구성과 과장된 몸짓이나 연기 톤 등은 진지함을 띠고 있는 극이라기보다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그 타깃(Target)이나 컨셉(Concept)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타깃이라기에는 대사나 흐름이 어렵게 느껴질 것 같았고, 중·장년층이 즐기기엔 인터넷 용어가 많이 활용되고 극적 진지함이 떨어져 지루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청소년층이 즐기기에 무난한 무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용이나 흐름이 장면 전환 등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끊길 때가 많아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또 음악이 배우들의 소리보다 커서 균형이 안 맞았고, 자막이 띄워져 있지 않아 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조금 더 완성도 있는 섬세함과 탄탄한 맥락을 가지고 극을 끌어 나갔더라면 더 좋은 공연이 되었을 것 같다. 음악의 경우 경기민요 ‘늴리리야’나 춘향가 중 ‘사랑가’ 가사를 활용한 곡을 대중적으로 만들어 부르거나, 판소리 어법으로 된 뮤지컬 같은 노래를 불러내며 전통에 기반을 둔 극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대중적이며 전통적인 새로운 색을 내려고 한 것과, 통일성 있는 음악 장르로 극을 끌어간 진행은 좋았지만, 흐름이 깨지는 갑작스러운 감정과 음악의 변화, 뚝 끊기는 듯한 노래의 마무리 등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新칠우쟁론기’는 우리가 세상을 살며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탐욕과 물질이 아닌 그 이면의 가치, 그리고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전 소설 ‘규중칠우쟁론기’라는 소스를 가지고 이 시대에 맞는 극을 만들어낸 아이디어나, 대중적인 음악과 춤, 유쾌한 대사를 사용한 시도는 훌륭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극의 주제나 본질이 흐려진 느낌이었고, 극의 진행이나 흐름이 어색하게 흘러 주제가 크게 와 닿지 않아 아쉬웠다. 덜어낼 것과 더할 것을 균형 있게 조절해 그 가치를 드러낸다면, 남녀노소 모두가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더욱 훌륭한 무대로 거듭날 것이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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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채치성 예술감독을 만나다[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는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 6개월이 된 채치성 예술감독님을 만났다. 그는 국악방송 사장, KBS 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 KBS 라디오 국악 프로듀서 등을 지내며 기획력과 단체 운영 역량을 인정받아 온 국악계의 원로다. 감독님이 꾸려나갈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방향성과 국악 및 국악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취임 축하드립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지난 11월부터 감독직을 맡게 되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왕 오게 되었으니 더욱 잘 이끌어서 명실상부한 악단으로 자리매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 중입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업무를 보는 데 치중하고 있어요. 악단 연주 일정은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올 9월까지 기획되어 있었기에, 저는 올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연주나 행사를 기획하여 시작하게 됩니다. 10월 2일에 진행될 공연에서는 제가 직접 작곡하고 지휘한 곡도 연주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늘 색다르고 다양한 관현악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어 항상 흥미로운데요, 이 악단을 앞으로 어떻게 꾸려 나가고 싶으신가요? 감독님께서 이끌기를 원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방향이나 음악적 가치 등이 궁금합니다. A. 무엇보다 국립단체이기에 우리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전통음악이 뿌리 깊게 근간이 된 가장 한국적인 무대를 더 많이 기획하고자 해요. 지금까지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현대적인 음악 어법이나 타 음악 장르와의 협업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관현악을 통해 대중적이고 다양한 색채를 선보였고, 단원들의 기량 또한 많이 향상되었는데요. 이를 발판 삼아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연주 기획을 많이 하되, 그 바탕에는 우리 음악을 잊지 않고 두고 싶습니다. 우리 장단과 우리 선율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관현악곡을 무대에 올려, 국립 악단으로써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싶어요. Q. 정오의 음악회나 관현악시리즈 등 정기적으로 선보이는 대표 시리즈가 있다는 것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런 시리즈는 어떻게 준비되나요? 관객들의 반응이 참 좋다고 들었습니다. A.정오의 음악회는 오랜 인기와 함께 늘 매진입니다. 대중들이 아주 좋아하는 시리즈인데요. 대중에게 익숙한 연예인이나 국악인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들려주며 관객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이 시리즈가 장기간 흥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관현악시리즈 또한 다양한 관현악곡을 조명하고 연주하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입지를 단단히 만들어 주는 데 한몫을 하고 있죠. Q.혹시 또 다른 시리즈나 새로운 공연이 계획되어 있나요? A. 6월에 계획된 야외 음악회 ‘애주가(愛酒歌)’라는 공연이 있습니다. 음악에 소량의 시음을 곁들이는 공연인데, 전통주를 마시며 전통음악을 관람하는 참신한 공연이라 아마 많은 분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또 국립합창단이나 창극단 등 국립극장에 소속된 전속단체들과 함께 합동하여 선보이는 브랜드 공연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Q. 감독님은 오랜 기간 국악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 오셨잖아요. 작곡뿐 아닌 방송 쪽에서도 국악 콘텐츠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1981년, KBS에 입사하여 PD로 활동한 것이 저의 첫 방송 생활이었습니다. 30분짜리 국악 관련 방송을 맡아 진행했기에 국악 음반 자료가 필요했는데, 그 당시엔 방송용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월요일마다 KBS 스튜디오에서 연주자들을 불러 음악을 녹음해 아카이빙을 쌓았죠. 그렇게 방송 시간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그 녹음 자료가 지금까지 쓰이니, 방송계와 국악계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국악방송에 재직하면서부터는 오로지 국악에 몸 바쳐 왔습니다. 국악 맞춤형서비스 등의 새로운 시도에도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이제는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베를린 필하모닉처럼 생중계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해요. 그렇게 되면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우리 음악도 멀리 뻗어져 나갈 것입니다. Q. 그렇다면 국악의 대중화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A. 대중성과 전통을 잘 엮어서 우리 음악이 어렵지 않다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 어법에 맞는 연주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 음악에 대해 이해하고, 우리 음악의 맛을 잘 살린 콘텐츠를 언론에 노출, 홍보하며 대중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음악은 충분히 생활화가 가능하고, 참 재미있으니까요. Q. 감독님께서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국악을 경험할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어릴 때부터 국악을 접했기에, 그 경험의 소중함을 잘 아는데요. 곧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린이 음악회 ‘별별 땅땅’이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A. 음악 교사직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학생들에게 단소를 만들어 가르쳤는데, 그 학생들이 지금까지도 그때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고 해요. 그만큼 어릴 때 음악언어를 알고 경험하는 게, 교육이 아주 중요합니다. ‘별별 땅땅’은 단원들이 소규모로 연주하고, 아이들이 국악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놀이 형태로 체험할 수 있게끔 해주는 공연입니다. 국립극장은 어린이 공연이 참 많습니다. 이 공연도 장기 공연인데, 많은 분이 믿고 찾아주셔서 늘 감사하죠. Q. 선생님께서 만드신 곡 ‘꽃분네야’가 생각납니다. 그 곡은 선율도 참 좋지만, 가사도 정말 정겹고 아련한 느낌이 들어요. 국악가요라는 장르가 그 곡으로 인해 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곡을 만들 때 가장 치중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꽃분네야’를 통해 우리 정서를 담은 대중가요를 가장 먼저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작곡, 작사를 할 때 우리 음악과 우리 말 어법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가사를 쓸 때 그 점에 가장 치중하여 작업합니다. 영어는 관사가 앞 박이지만, 우리말은 반대죠. 강세와 문장의 어법을 막무가내로 쓰지 않고, 문장이 말이 되도록,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적으로 장단이나 선율 등 한국적인 정서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Q.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님으로서, 또 국악 분야의 원로로서 앞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예술감독직을 수행하며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공연을 많이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서울에 자리하고 있지만, ‘국립’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악단입니다. 그 이름답게, ‘찾아가는 국립극장’ 프로그램처럼 서울 외의 지역에 가 공연한다든지, 문화소외계층이 국악을 경험할 수 있게끔 다양한 무대를 더 많이 기획하여 꾸리고자 해요. 그리고 무대를 영상으로 남기거나 송출하는 영상화 사업에도 힘을 많이 쏟을 예정입니다. 채치성 예술감독님이 인터뷰 내내 강조하던 것은 ‘가장 한국적인 우리 음악’이었다. 우리 음악이 가진 독자적인 묘미, 아름답고 가치 있는 그 매력을 잃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목소리에는, 오랜 시간 국악계에서 국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그의 열정과 사랑이 묻어났다. 앞으로 채치성 예술감독님이 이끌어 갈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굳건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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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새로운 춘향가- ‘틂:Lost&Found’[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학로극장 쿼드의 ‘쿼드초이스’가 다채롭고 실험적인 무대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쿼드초이스'는 동시대적 가치를 담은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 프로그램으로, 기존 전통 음악 장르의 경계를 허문 예술가들이 그 무대를 꾸렸다. 대학로극장 쿼드(QUAD)는 블랙박스 공연장으로, 무대의 모양에 따라 자유자재로 객석 변형이 가능한 유연한 공간이다. 그 가변성은 무대와 객석이라는 형식에 갇히지 않고 관객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쿼드초이스’는 총 세 번의 공연으로 진행되었으며, 그중 소리꾼 김율희, 전통타악 연주자 황민왕, 전자음악 기반 전통예술가 Jundo가 펼친 새로운 우리 소리의 판, ‘틂:Lost&Foun’ 무대를 관람했다. ‘틂:Lost&Found’의 ‘틂’은 ‘노래를 튼다’라는 의미와 ‘기존의 판을 틀어서 새롭게 조망하자’는 의미다. 전자 음악 예술가 Jundo는 ‘전통 판소리에 있는 판의 개념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조성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이 무대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 ‘상황과 장면’을 뜻한다. 이들은 블랙박스 공연장 쿼드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이 시대의 새로운 ‘판’을 만들어 냈다. ‘전석 비지정석으로 운영되며 공연 중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설명과 함께 들어선 무대는 블랙박스 공연장답게 검고 다소 어두웠으며, 희고 긴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천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대 형식이 아니었기에 연주자들의 무대가 한 군데에 모여있지 않았고, 사각형의 각각 마주 보는 면에 황민왕이 연주할 타악기와 Jundo가 연주할 전자 기기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공간의 중심부와 주변부에는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한 사각형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앉고 싶은 곳을 찾아 앉고, 무대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흰 천으로 사방이 가려진 구석의 사각 공간에서 ‘만첩청산’이 흘러나왔다. 김율희의 소리와 황민왕의 북 반주에 맞추어 시작된 노래였다. 곧이어 ‘사랑가’가 불렸다. 편안하고 몽글몽글한 사랑 노래에 맞추어 조명 또한 밝은 네온 느낌으로 변화했다. 사각 공간을 뒤덮고 있는 흰 천이 따스한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빛으로 인해 두 연주자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러나 부채를 활용한 멋스러운 발림과 북을 연주하는 모습을 독특한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사랑가의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가사와 함께 Jundo의 전자 음악 사운드가 얹어졌다. 울림 가득한 리버브(Reverb) 사운드가 신비감을 조성했고, 공간감이 가득한 앰비언트(Ambient) 형태 위의 소리가 점점 강해지며 종이 천이 한 번에 떨어졌다. 연주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판소리와 전자 음악은 A key에 맞추어 안정적으로 섞여 들었고, 몽환적이면서도 힘 있는 느낌을 자아냈다. 이어 김율희는 구석의 사각 공간에서 나와 관객들이 앉아있는 공간으로 올라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관객 친화적’ 구성이었다. 관객들은 소리꾼의 노래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관람할 수 있었고, 김율희는 관객들에게 짧게 말을 걸거나 유쾌하게 소통하며 편안하게 무대를 끌어 나갔다. 자진모리장단의 빠르고 유쾌한 느낌의 ‘신연맞이’가 불렸다. 풍성하고 힘 있는 전자 음악 사운드에 타악기 연주가 가미되어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을 풍겼다. 황민왕이 구음으로 노래하며 장구를 칠 때는, 전자 음악의 플럭(Pluck, 음의 지속이 짧으며 리드미컬한 연주에 자주 사용되는 신스 기반 음악)사운드가 장단의 리듬꼴을 함께 연주했다. 전통 악기와 전자 음악이 장단을 통해 한데 어우러지며, 매력적이고 독특한 느낌을 자아냈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변화무쌍한 춘향가의 노래가 몇 곡 불린 후, 주황빛 조명 아래 황민왕의 솔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는 양손에 궁채를 잡고 즉흥적으로 장구를 연주했다. 딴딴한 음색의 시원한 소리가 공간을 풍성하게 울렸고, 섬세한 다이내믹 연주가 감탄을 자아냈다. 곧이어 빗소리와 함께 녹음된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감성적이고 편안한 목소리로 전해진 춘향의 서글픈 이야기는 고어(古語)가 아닌 요즘 사용되는 언어로 이루어져 더욱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웠다. 내레이션 위에 김율희의 목소리가 마이킹되지 않은 상태로 얹혀 불리다가, 내레이션과 음량이 교차되며 점점 커져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대가 흘러도 사랑의 본질과 가치는 다르지 않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었다. 곧이어 새 소리와 함께 아침이 밝고, 울렁거리는 신스(Synth)사운드 위에 마이너한 코드가 쌓이며 황민왕의 아쟁 연주가 시작됐다. 아쟁 연주는 화려하기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했고, 함께 연주된 전자 음악은 점차 다이내믹하게 발전하며 축축한 공간감과 함께 영화음악 같은 효과를 주었다. 그리고 편안한 비누향이 공간을 감쌌다. 향기 분무를 통한 후각적 연출이 음악을 더 따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70분간 관객들은 공간과 음악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느껴볼 수 있었다. 소리꾼의 이동에 따라 관객들도 자리를 바꾸어 가며 관람했고, 자유롭게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네모난 블랙박스 안, 모든 공간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퍼포먼스는 새로운 시각과 시선으로 춘향가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쉬웠던 것은 짧은 시간 동안 춘향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흐름이 모호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레이션이나 악기 솔로 등이 중간중간 나열되는 부분은 무얼 표현하는지 쉽게 알기 어려웠다. 춘향의 이야기를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한 색다른 시도는 좋았으나, 조금 더 뚜렷하고 통일성 있는 서사가 있었더라면 더욱 완성도 있는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 곡인 ‘어사출두’를 노래할 때, 김율희는 모두 영상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자고 유도하며 관객들과 유쾌하고 신명 나는 판을 만들어 냈다. 관객들은 서리와 역졸이 되어 음악에 참여했고, 다 함께 일어나 리듬을 타며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이 시대의 새로운 춘향가를 즐겼다. 오감의 활용, 화려하고 분위기 있는 조명, 대중적인 전자 음악 사운드와 전통 예술이 만들어낸 무대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판,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현대적 전통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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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악단의 조화로운 하모니, ‘하나 되어’[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4일, 국립국악원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118명으로 구성된 연합 관현악단 무대 ‘하나되어’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올렸다. 국악계의 화합을 상징하는 이 공연은 지난해 11월 기획된 공연으로, 세 악단이 모여 국악관현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모였다. 이번 4월 무대는 지난 1월 31일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2월 22일 서울 KBS홀에 이어 세 번째 마지막 연합 연주회로 꾸려졌다. 공연은 연주단의 특색을 담은 관현악곡 1곡과 협주곡 5곡으로 구성됐다. 지휘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권성택 예술감독, KBS국악관현악단의 박상후 상임지휘자, 전북도립국악원의 이용탁 예술감독이 2곡씩 번갈아 맡았으며, 협연자들 역시 각 악단의 단원들이 번갈아 가며 나와 기량을 펼쳤다. 예악당 무대는 115명의 연주자로 가득 채워졌다. 첫 무대는 박범훈 작곡가의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위한 뱃노래’로 열렸다. 경기민요 뱃노래를 주제로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분위기를 그려낸 작품으로, 풍성하고 시원시원한 타악기와 관악기 소리가 상쾌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특히 많은 연주자로 이루어져 확대된 편성의 국악관현악이었기에 더욱 풍성하고 새로운 음향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이용탁 지휘자의 지휘는 확실한 다이내믹과 강약이 돋보였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곡을 끌어가 편안한 감상을 선사해 주었다. 이어 황해도 철물이굿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정면 편곡의 ‘소리와 관현악을 위한 바람과 나무와 땅의 시’가 연주됐다. 박상후 지휘자의 지휘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유지숙 예술감독,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인 김민경과 장효선의 협연으로 펼쳐졌다. 황해도 지역에서 봄이나 가을에 축복을 기원하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재수굿인 ‘철물이굿’을 바탕으로 구성된 곡으로, 세 소리꾼은 굿과 관련한 의복을 입고 노래했다. 유지숙 예술감독의 선창으로 시작된 이 무대는 관객들에게 덕담을 전하고 복을 기원하며 축원하는 노래로 꾸려졌다. 관현악 반주는 대중적이고 편안한 선율과 코드 진행을 활용하여 푸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그 위에 자연스럽게 얹힌 서도 소리는 경쾌하고 흥겨웠다. 서정적이고 대중적이나 뻔하지 않은 코드 진행을 이끈 베이스라인은, 발현악기의 튕기는 음으로 진행되어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무대 위에는 복채를 넣는 함이 있었다. 많은 관객이 무대 앞으로 나와 복을 빌고, 복채를 함에 넣은 후 흥겹게 춤추며 기뻐했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친숙하고 신명 나는 무대로 꾸려져 관객 친화적이고 경쾌한 느낌이 가득했다. 유지숙 감독의 재치 있는 입담과 관객과의 대화는 친숙하고 편안한 감상을 끌어냈으며, 박상후 지휘자가 품속에서 복채를 꺼내 함에 넣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복을 비는 모습은 기분 좋은 웃음을 자아냈다. 세 번째로 연주된 곡은 토마스 오스본(Thomas Osborn) 작곡의 ‘해금 협주곡 벌시스(Verses)’였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수석을 맡고있는 조진용 연주자가 해금 협연을 맡았다. ‘벌시스(Verses)’는 한국의 시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으로, 잔잔한 물결과 얼어붙고 격정적인 파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식 안에서의 물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곡이다. 리듬을 다양하게 쪼개고 늘리며 매력적인 사운드를 선보인 이 곡을 통해 관현악의 색다른 느낌을 느껴볼 수 있었다. 기존 국악관현악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음색 간의 조화보다는, 지금껏 시도되지 않던 악기 간의 어우러짐, 악기들의 색다른 표현이 많이 시도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현대적이고 독특했다. 해금 독주는 개방현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높고 낮은 음역대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해금의 얇지만 강하고 단단한 소리가 곡을 감쌌고, 특이한 주법을 구현하거나, 기묘하고 오묘한 선율을 활용하여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을 동시에 발산해 해금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의 서정미 수석 단원이 작·편곡한 ‘관현악을 위한 3중 협주곡 무산향(舞散響)’은 원장현 대금 명인이 구성한 독주곡 ‘춤산조’를 관현악곡으로 새롭게 편곡한 곡이다. 경쾌하고 화려한 동살풀이 장단에 맞추어 관현악단과 협연자들이 맛깔스러운 민속악 느낌을 흥청스레 연주했다. 풍성한 관현악과 빌 틈 없는 독주 악기들의 깔끔한 산조 연주가 짜임새 있게 어우러져 흥겨움과 편안함을 선사해 주었다. 이어 경쾌한 굿거리 위에 정겹고 익숙한 경기제 태평소 선율이 박지중 연주자의 연주로 이어졌다. 여유로운 태평소 선율과 함께 연주된 관현악은 서정적으로, 그리고 민속악적으로 자연스레 얽혀 들어갔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장단 속에서 호탕하고 멋스러운 태평소의 기교가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최지혜 작곡의 ‘3개의 현악기를 위한 산조 협주곡 시절풍류’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2022년 국립국악원 위촉 곡으로, 가야금, 거문고, 소아쟁의 산조 가락에 맞는 관현악으로 구성되었다. 국악기의 대표 현악기 세 대가 독주 악기로 연주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뜯고 튕기는 현악기의 독특한 사운드가 ‘산조’라는 주제 안에 하나 되어 어우러져 독특하고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관현악은 대중적인 베이스 코드 진행을 활용하여 곡의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끌고 가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음악 같은 화려하고 웅장한 분위기 안에서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이미지가 그려졌다. 이 시대에 맞는, 이 시대의 풍류였다. 연합 관현악단 무대 ‘하나되어’는 세 악단이 하나로 화합하여 함께 하모니를 이루어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었다. 115명의 연주자는 서로 다른 악단 단원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고 조화로운 무대를 만들어냈고, 세 명의 지휘자가 만들어 낸 지휘 스타일은 각기 달랐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악단 연주자들과 지휘자들은 이 공연을 통해 서로 교감하며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음악적 성장 또한 이루었다고 한다. 화합하며 하나 되는 이런 무대적 기획을 통해, 국악관현악이 다방면으로 활성화되고 발전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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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 III ‘한국의 숨결’[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3월 29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 III ‘한국의 숨결’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이날 공연에서는 국내 합창음악의 선두 주자인 국립합창단과 함께 우리 전통의 정서를 담은 한국적 색채의 ‘시조 칸타타’와 장르 간 경계를 허문 현대적 색채의 ‘천년의 노래, REBIRTH’ 두 곡이 선보여졌다.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박상후 지휘로, 국립국악관현악단 72명과 국립합창단 54명, 소프라노, 테너, 정가 가객 등 130여 명이 무대를 가득 채워 웅장한 합창을 들려주었다. 1부에서는 이영조 작곡의 ‘시조 칸타타’를 소프라노 이유라, 테너 신상근, 정가 하윤주의 협연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칸타타(cantata)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cantare)에서 유래한 용어로,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기악 반주에 독창·중창·합창이 어우러진 성악곡이다. ‘시조’는 문학이자 음악의 한 갈래로, 조선 시대 유행한 시조에는 당시의 시대적인 정서와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두 장르가 결합한 ‘시조 칸타타’는 이영조가 새롭게 만든 장르로,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태어난 두 성악 장르가 조화를 이루어 각각 고유의 어법을 지닌다. 이영조 작곡가는 "한국 전통음악이라는 우리만의 진솔한 맛을 서양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악곡 형식의 그릇으로 담아낸 곡”이라고 밝혔는데, 그 말처럼 전통적이면서도 서구적인 매력이 함께 존재하는 무대였다. ‘시조 칸타타’는 ‘자연’, ‘사랑’, ‘효’ 세 갈래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무대를 꽉 채운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합창단의 웅장하고 화려한 합창과 합주로 무대가 시작됐다.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균형 있게 나뉜 성부가 자아내는 온전하고 편안한 화성 진행 안에 노래와 연주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관현악 연주는 전통 음악 어법이나 음계가 다양하게 활용되기보다는 서양 음악적 스케일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빠르고 화려한 패시지로 연주되기도 하고, 서정적인 화성 진행이 다양하게 활용되기도 했다. 소프라노의 고음과 대금의 청소리가 함께 연주해 질러낸 부분은 국악기와 합창의 어울림에 대해 고민한 작곡가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음악은 자연 안에 거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경외감이 드는 웅장함을 자아냈고, 이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룬 곡이 솔리스트들의 노래로 불렸다. ‘봄’은 웅장하면서도 힘 있는 3박으로, 한국 가곡 느낌이 나는 합창과 연주로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계면조의 꺾는음을 사용하는 등 전통 어법이 녹아든 한국적 색채가 묻어났고, 합창단의 노래는 레퀴엠(Requiem)이 연상되며 엄숙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 해금과 아쟁, 스트링의 장난스런 활놀음으로 분위기가 밝게 전환되며 소프라노 이유라의 솔로가 얹혔다. 그는 ‘지지배배’ 등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경쾌하고 빠른 패시지로 노래해 성악의 매력을 선보였다. 대금과 소금은 마치 플루트와 피콜로의 음색을 따라 하는 듯한 표현으로 연주했고, 오페라 마술피리 중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이중창이 떠오르며 유쾌하면서도 밝은 봄의 따스함이 그려졌다. ‘여름’은 느리고 애절한 느낌 가운데 테너 신상근의 아련한 음색으로 시작됐다. 이 곡은 소리북이 곡을 이끌어가며 장단으로 박을 잡아간 것이 인상적이었다. 느린 시조를 서양 성악으로 노래하는데, 그 위에 소리북 특유의 채편 소리가 얹히니 신선하고 새로운 판소리를 듣는 듯했다. 이어 연주된 첫 번째 ‘가을’은 피리의 서정적이고 전통적인 독주로 시작하여 부드럽고 평온하게 흘러갔고, 그 위에 가객 하윤주가 ‘월정명’으로 시작하는 가사를 얹어 노래하기 시작했다. 정가 특유의 표현이 묻어나며 전통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냈는데, 관현악 또한 흔들고 꺾어내며 힘 있는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바로 이어진 두 번째 ‘가을’은 합창단의 남성들이 유니즌(Unison, 몇 개의 악기 혹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같은 음 혹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일)으로 앞서 불렸던 ‘월정명’의 가사를 받아 노래했다. 그들이 불러내는 선율은 정가의 표현을 그대로 흉내 내 꺾고, 흘리고, 시김새를 활용하여 전통적인 색채를 표현하였다. 서양 음악적인 화성 진행이 사용되고 각 성부마다의 매력을 다르게 주어 노래하니 마치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는 것처럼 엄숙하고 신성한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그 선율 진행은 전통 가곡다웠기에 더욱 묘하고 매력적이었다. 지조 있고 절개 있는 대나무를 표현하듯 웅장하고 화려하던 ‘겨울’은 영화음악 같기도, 현대음악 같기도 했다. 오묘하고 독특한 화성 진행은 어디로 튈지 모를 느낌을 주었고, 반음계와 다양한 텐션(Tension, 기본 화성 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비화성음을 쌓는 것)을 활용함으로써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두 번째 파트 ‘사랑’은 테너 독창자가 부채를 들고 노래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랑을 비유 대상으로 표현한 이 곡은 춘향가 중 사랑가가 연상되었는데, 테너 음색으로 판소리처럼 노래하니 더욱 색다르고 특이했다. 서양음악적인 음악 진행과 전통 음악 어법의 조화야말로 한국적 칸타타의 가장 큰 매력임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효’의 첫 번째 곡 ‘하늘 땅’은 세 명의 솔리스트(소프라노, 테너, 정가 가객)가 함께 주고받으며 노래했다. ‘효’를 주제로 한 우리 시조 안에서 서로 다른 음악적 표현과 음색이 한데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마지막 곡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셨으니’에서는 부모를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이 합창으로 깊이 드러나, ‘효’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를 예술적이고 평온하게 표현하였다. 2부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자 석학인 이어령 선생이 조감해 온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가사와 음악으로 담아낸 ‘천년의 노래, REBIRTH’를 만날 수 있었다. 2021년 ‘천년의 노래, REBIRTH’에서 위촉 초연된 작품으로, 시대의 지성이었던 이어령 선생의 한국 문화론이 담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한국인의 신화’, ‘뿌리를 찾는 노래’, ‘한국인 이야기’ 등에서 발췌한 내용이 노랫말로 엮여있다. 앞서 1부에서 연주된 ‘시조 칸타타’가 고전적이고 전통적이었다면, ‘REBIRTH’는 조금 더 대중적인 표현이 가미된 느낌이었다. 우효원 작곡가는 이어령 선생의 많은 저서 속에 담긴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이야기와 깊은 성찰의 언어를 총 5개의 악장에 담아냈다. 편종과 오션드럼(Ocean Drum), 목탁, 정종 등의 특수 타악기가 자아내는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 거문고를 시작으로 악기들이 점점 들어오며 발전됐다. 하나의 동일한 리듬 형태의 리프를 반복시키며 커진 음악은 평화로운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이 그려지는 듯했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전통적이고 평온하게 그려냈다. ‘흙, 바람, 눈물’과 ‘MEMENTO MORI’(죽음을 생각하라)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흙, 바람, 눈물’에서 합창단이 가사의 내용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내는 다이내믹은 곡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예를 들어 ‘악운’이나 ‘가난’ 같은 부정적 단어는 강렬하고 세게 질러내다가도, 내 땅이라 다짐한다는 긍정적인 가사는 간절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불러냈다. 감정적인 노래와 연주는 마치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하나의 극을 보는 듯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어령 선생이 자주 강조했던 ‘MEMENTO MORI’는 존 노의 테너 독창으로 함께했다.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다이내믹이 인상적이던 그의 음색은 죽음의 본질과 두려움을 노래하며 모두에게 다양한 생각을 안겨주었다. 성대한 합창으로 희망을 노래한 ‘노래여, 천년의 노래여’는 우리나라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던 이어령 선생의 마음이 가사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득한 추억을 그리는 듯 고요한 소아쟁의 음색과 대중적이고 단정한 코드 진행, 풍성한 연주와 음악적 빌드업에 마음이 차올랐다. 음악의 절정에 이르러 타악기 연주자들이 사물놀이를 연상시키는 합주를 하며 우리 민족의 흥을 깨워냈고, 대금의 서정적인 아리랑 선율로 이어지며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의 선율로 구성된 ‘환희의 아리랑, REBIRTH’가 연주되었다. 4중창 성악가들이 합세하여 다 함께 부르는 아리랑이 무대를 감쌌다. 각 성부의 조화가 새로 편곡된 아리랑 선율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노래했고, 모두가 흥겹게 부르는 ‘판’을 만들어냈다. 한국인의 한과 흥을 물씬 느낄 수 있던 무대였다. ‘시조 칸타타’는 ‘자연’과 ‘사랑’, ‘효’를 주제로 합창과 독창, 국악관현악이 어우러지게 구성되었다. ‘천년의 노래, REBIRTH’는 한민족의 삶, 한과 흥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이 두 무대는 과거의 선조들로부터 현재의 우리, 미래의 세대가 살아갈 이 땅에서의 모든 감정과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아리랑 부를 때 너와 나 되네, 쓰리랑 부를 때 우리가 되네’라는 가사처럼, 함께 살아왔고 함께 살아갈 이 땅의 우리가 더욱 지켜나가고 그려나갈 것에 대해, 그리고 국악관현악과 서양 합창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보여준 ‘함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 정서가 살아 숨 쉬는 동시에 서양 고전 형식이 조화롭게 그려나간 이번 무대처럼, 배려하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갈 우리의 삶과 예술을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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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주자 시리즈 ‘국악관현악-공존(共存)’[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3월 2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2024 명연주자 시리즈 ‘공존(共存)’ 무대가 펼쳐졌다. ‘명연주자 시리즈’는 동시대 최정상의 연주자들을 조명하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대표 레퍼토리 공연으로, 2022년부터 시작되었다. 올해 3회차에 접어든 명연주자 시리즈는 ‘공존(共存)’을 주제로 하여 동서양의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주제가 함께 했다. 올해 선정된 명연주자는 이지영(가야금/서울대학교 교수), 양성원(첼로/연세대학교 교수), 이나래(대금/서울시국악관현악단 수석) 총 세 명이었으며, 지휘는 앙상블 밴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상욱이 맡았다. 첼리스트 양성원이 협연한 ‘첼로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미제레레(Miserere)’로 무대가 열렸다. 양성원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와 제 4대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첼리스트이다. 그는 쾌자를 연상케 하는 퓨전 정장을 입고 들어와 연주를 시작했다. 발현악기들의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어 음을 내는 방법)를 발판 삼아 첼로의 부드럽고 서정적이면서도 힘 있는 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미제레레(Miserere)’란 아름답고 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종교적인 단선율 성가이다. 이번에 연주된 김성기 작곡가의 ‘미제레레(Miserere)’는 라틴어 ‘미제레레(Miserere)’의 억양을 이용한 주제를 바탕으로 그의 사상과 감정을 담았다고 한다. 본래 성가곡은 반복적이며 단순하게 진행되는데, 그와 같이 이 곡에서도 ‘F, Ab, G, Eb’으로 구성된 네 개의 음과 동일한 형태의 리듬이 첼로 독주와 관현악 반주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그 테마를 가지고 변형, 발전됐다. 첼로는 격정적이고 열정적으로 활을 긋다가도, 여리고 부드러운 소리로 간절한 감정을 노래했다. 관현악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로 활용되었는데, 마이너하고 엄숙한 느낌을 주었다. 양성원 연주자가 연주하는 첼로 연주에는 강한 카리스마가 존재했다. 중후하고 우직한 저음으로 시작해 화려하고 힘 있게 달려가는 다이내믹한 연주에는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특별함이 존재했고, 자유로우나 어딘가 종속되어 있는듯한 종교적인 느낌이 과하지 않은 진지함과 웅장함을 선보였다. 안현정 작곡가의 ‘대금 폴로네이즈를 위한 A Beautiful Life’는 17세기 폴란드의 춤곡 ‘폴로네즈’를 바탕으로 한 대금 협주곡이다. 새소리와 오션드럼(Ocean Drum)이 내는 파도 소리가 어우러지며 자연 친화적인 무대가 열렸고, 그 위에 대금 연주자 이나래가 대금으로 만들어 낸 바람 소리가 얹어졌다. 관현악은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느낌으로 하나둘 점점 커지며 웅장하게 음악을 열어냈다. 이 곡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고픈 마음을 담아냈다. 어떤 부분은 밝고 긍정적으로 표현된 반면, 어떤 부분은 마이너한 진행에 반음과 계면조의 꺾는음을 활용하며 비장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카덴차(Cadenza, 악곡이 끝나기 직전에 독주자나 독창자가 연주하는, 기교적이며 화려한 부분)에서 이나래는 농음을 과하게 떨어주거나,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으로 연주하기도, 화려하고 빠른 패시지를 깔끔하게 선보이기도 했다. 독주 부분이 끝난 후에는 곡의 초입에 나왔던 새소리 효과와 함께 화려하고 유쾌한 폴로네즈 리듬이 밀고 당기는 리듬으로 반복되었다. 관현악과 독주 대금은 화려하고 웅장하게 곡을 끌어 나갔고, 반음 음계가 반복되며 긴장감을 주다가도 풀어지며 생동감 넘치게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세 번째 무대는 이지영 명인의 가야금 협연 무대로,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가 김만석이 새롭게 편곡한 ‘서공철류 가야금산조 협주곡 - 心授(심수)’가 초연되었다. 이지영 명인은 곡의 초입, 다스름 연주를 통해 꿋꿋하고 장중하며, 호방하고 힘 있는 터치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굴려 내는 시김새나 진하게 떨어내는 농현을 통해 그의 음악적 깊이를 도드라지게 나타내었다. 가야금 산조가 장단 순서대로 진행되는 동안, 관현악은 악기군별로 번갈아 가며 가야금 가락을 유니즌(Unison, 몇 개의 악기 혹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같은 음 혹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일)으로 연주하거나, 대선율(어떤 선율 성부에 대위(對位)하는 다른 성부)로 받아 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장단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이지영 명인의 섬세하고 유려하며, 힘 있는 연주는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휘모리장단에서 그가 보여준 깔끔함과 다이내믹한 조화로운 연주는 큰 감동을 전해주었다. 관현악 반주는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코드나 베이스 하행 진행 등을 활용하여 화성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음악적으로 풍성함을 만들어 낸 것은 좋았으나, 관현악에 모든 소리가 집중되다 보니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가야금 산조의 민속적인 색채가 묻히고 돋보이지 못하기도 해 아쉬움이 남았다. 관현악과 독주 악기 간 조화로움을 꾀어 균형 있게 만들어 냈다면 더욱 민속적이며 신선한 무대가 되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연주력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던 관현악곡 ‘메나리 토리에 의한 국악관현악- 감정의 집’이 연주되었다. 최지혜 작곡가의 작품 ‘감정의 집’은 한국의 크고 작은 강이 갖는 생명력과 정화의 이미지를 서사적으로 펼쳐낸 곡이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대표 국악관현악 곡이기에 더욱 기대하는 마음으로 관람하였다. 무대는 ‘라솔미-’하고 흘러내리는 메나리토리의 대표 어법을 모든 악기가 함께 연주하며 웅장하게 열렸다. 이 곡은 악기군별로 갖고 있는 특징과 매력을 잘 드러내고, 음악의 기승전결과 구성이 뚜렷하여 완성도가 높았다. 악기 단독으로 연주하기도 하고, 두세 종류의 악기가 하나의 군으로 묶여 균형 있는 조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곡은 크게 두 악장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빠른 패시지에 오묘하고 익살스러운 테마 악장은 ‘3+3+2’ 소박이나 장단을 중심에 두고, 거문고와 아쟁이 저음부에서 반음이 반복되는 리프를 연주했다. 그리고 그 위에 악기들이 번갈아 가며 주제 테마를 연주하고 점점 발전돼 갔다. 악기 고유의 특징적인 음색이 도드라졌고, 농현이나 농음, 시김새 등이 짙게 표현되어 전통적이며 예술적인 느낌을 주었다. 생황과 소금이 중심이 되어 연주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또 다른 악장은 마치 영화음악 같았다. 대피리 등 저음 악기가 다양하게 활용되며 음향적으로 풍성했고, 화성적으로 대중적인 코드 진행이 사용된 동시에 선율은 메나리토리 어법과 시김새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현대적이고 전통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꽃밭에서 뛰어노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지며 모두를 추억에 젖게 만든, 아름다운 무대였다. 동서양의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주제가 함께한 이번 공연에서는, 동시대 최정상의 음악가들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조화로운 연주와 함께 음악적 몰입감을 느껴볼 수 있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보여 줄 다음 명연주자 시리즈를 기대하며, 국악관현악의 발전을 더욱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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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극 ‘두아-유월의 눈’[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2일부터 22일, 국립정동극장은 대표 기획공연 사업 ’창작ing’의 두 번째 작품, 소리극 ‘두아:유월의 눈’을 무대에 올렸다. ‘두아:유월의 눈’은 13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고전인 관한경의 『두아원』을 판소리의 상상력과 연극의 놀이성을 결합하여 소리극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채노파에게 맡겨진 주인공 ‘두아’가 겪는 삶과 운명,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국악 뮤지컬, 낭독극, 라디오드라마 등 전통예술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창작물들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판소리 단체 ‘타루’가 개발했고, 서정완 연출이 연출을, 김한솔 작가가 각색으로 참여했다. ‘두아:유월의 눈’은 2022년 영등포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이번에 2024년 국립정동극장 세실에 다시 오르며, 무대와 음악은 다양하게 변화했다. 소리꾼들이 유랑극단의 광대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의 개성을 더욱 강조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무대디자인의 구성 변화가 있었고, 작곡가 손다혜가 이번 공연부터 새롭게 합류하며 기존 3명의 연주자가 4명으로 늘어나 풍성한 연주를 선보였다. 무대는 아치형으로 둥그렇게 만들어져, 그 안에는 커다란 둥근 달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무대 중앙 뒤편에 놓여있었다. 음악 반주를 맡은 악사들은 양옆으로 나뉘어 자리했고, ‘타루극장’이라는 푯말을 걸어둠으로써 이 무대가 연극판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이윽고 공연을 끌어 나갈 소리꾼들이 각자 북과 소고, 징 등 타악기를 들고 무대로 나와 악기를 치며 공연이 어떻게 펼쳐질지 비나리 형태로 노래했다. 비나리 장단 안에서 한 명이 소리하면 뒤에서 타악기 반주로 받아주는 방식을 사용했고, 그 후 한 명씩 각자가 맡은 역할을 소개하는 주제 노래를 부르며 경쾌하게 무대를 열었다. 그리고 신명 나는 노래가 끝나는 동시에, 악기가 그 끝을 물고 들어가 서정적이고 으슥한 분위기로 본격적인 무대를 열었다. 배우들은 유랑극단원들로, 각각 배역을 맡아 공연하는 컨셉으로 무대가 진행되었다. 그들은 본인 파트를 연기할 때가 아니면 원형 무대에 둘러앉아 다른 배우들이 소리하고 연기하는 걸 보고, 추임새를 하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무대를 둘러싸 악단과 배우들이 둘러싸도록 배치한 건 굿판을 따라 한 방식이라고 한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들은 옹기종기 둘러앉아 동료 배우의 연기와 소리를 응원해 주고, 공감하며 집중했다. 그 장면은 마치 소리판에 민중들이 둥그렇게 모여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흥과 한을 공유하는 정겨운 모습처럼 그려졌다. 비록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전통 예술을 기반으로 무대를 끌어가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6월, 두아가 억울하게 형장으로 끌려가는 내용으로 막이 열렸다. 결말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이 이야기가 결국 비극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어두운 내용이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유쾌하고 쉽게 그려져 나갔다. 연극배우들이 연기 하는 설정이라 그런지 빠른 전개로 진행되고 늘어지지 않아 집중력 있게 무대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감상 포인트 중 하나는, 각 배우들이 맡은 역할의 독특한 특징이 도드라졌던 것이다. 다리 한 쪽이 불편한 채노파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과장된 몸짓으로 걸어 다녔고, 욕심 많고 아들에게 꼼짝 못 하는 장려아 아비는 과하게 높고 얇은 음색의 뒤집어지는 목소리를 내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어린이극을 자주 올리는 타루답게, 보고 듣는 연극적 요소에 신경 써 남녀노소 모두가 편안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게끔 하였다. 무대의 연출 기법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것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였다. 두아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유월에 눈이 내리는 장면은 부채로 눈꽃을 날리듯 표현하였고, 그 눈을 빗자루로 쓸어 치웠다. 죽음으로 향하는 자들은 모두 무대 뒤 달처럼 동그란 조형물이 빨갛게 변할 때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풍성한 완전한 ‘극’이었다. 원작 작가 관한경은 『두아원』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억울한 처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두아를 그 누구도 도와주거나 편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각색을 맡은 김한솔은, 두아가 너무나 가여워 두아에게 단 한 명이라도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을 주고자 채노파 캐릭터를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가져왔다고 한다. 둘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 어떤 가족보다도 끈끈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두아는 채노파가 고문받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거짓을 고해 죽었고, 채노파는 두아가 죽은 뒤 하루도 빠짐없이 제사를 지내주며 그리워한다. 이렇게 누군가가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지켜주고 울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는 걸 그려낸 따스한 연출이었다. 이 공연은 소리극인 만큼, 연기와 함께 ‘소리’로 이루어진 장면이 많았다. ‘타루’는 공동 작창을 통해 소리꾼들과 함께 극본을 분석하고, 작품 속 소리의 흐름을 논의해 나간다. 이들이 만들어 낸 창작 소리는 일반적으로 불리는 다른 작창 기법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기존 판소리가 지니고 있는 고정적인 길에 가사를 붙이는 형식으로 만들기보다, 가사 전달에 더 큰 의미를 두어 작창하였다.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는 데에 힘을 쏟았고, 그러다 보니 노래하듯, 혹은 시를 읊듯 소리를 하여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극적이었다. 타루가 만들어 낸 소리에는, 독자적이고 독특한 흐름과 색채가 확실하게 존재했고, 그 소리의 이면을 통해 다양한 생각거리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장단은 소리꾼들이 노는 ‘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악기들은 대부분 장단에 맞추어 음악을 진행해 나갔다. 엇박으로 이루어진 긴 프레이즈의 굿 장단에 맞추어 피아노와 기타가 리듬꼴을 연주한 부분은 우리 장단을 다양하게 표현하고자 한 음악적 연출이 도드라졌다. 피아노와 기타는 적재적소의 장면에 등장해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장려아가 음식에 독을 타는 장면에서는 피아노가 마이너(Minor)한 화성으로 스타카토(staccato, 음을 하나하나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연주법)를 활용해 장난스러우면서도 기묘하고 음산한 느낌을 주었고, 두아와 채노파가 슬픈 마음으로 함께 노래할 때는 피아노와 기타가 서정적인 선율을 연주해 감정적으로 몰입하게끔 해 주었다. 그 외에도 두아가 억울하게 곤장 맞는 장면은 악기 ‘박’으로 표현한다거나, 도올이 등장할 때는 ‘나발’을 불고, 두아의 죽음 이후 두천장이 부임해 오는 장면은 ‘나발’을 부는 등 특수 국악기를 다양하게 활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두천장은 두아가 죽어서야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억울함을 하늘에 얘기하는 것이 두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지만, 무대에서는 결국 두천장이 두아를 도와 그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원작 『두아원』이 쓰인 지 900년이 지난 지금,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세상에는 부조리함과 슬픔이 만연하다. 역사는 돌고 돌며,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은 끊이지 않는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두아를 위해 손 내밀 수 있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 소리꾼은 공연의 끝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뒤 이야기 뉘 알소냐. 이 세상에선 다른 결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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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열의 ‘피아노 춘향(春香)’[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3월 15일과 16일 이틀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고영열의 피아노 병창 ‘춘향(春香)’ 무대가 열렸다. ‘피아노 치는 소리꾼’이라는 타이틀로 유명한 고영열은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피아노를 치며 소리를 하여 ‘피아노 병창’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클래식, 팝, 재즈, 월드 뮤직 등의 여러 장르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국악의 다양성과 대중성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JTBC ‘팬텀싱어 3’에서 ‘라비던스’의 멤버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대중들의 인지도를 높였으며, 이후 국내외 유수한 국공립 단체와의 다양한 협연 무대, KBS ‘불후의 명곡’, ‘열린음악회’, MBC ‘복면가왕’ 등에 출연하며 국악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3월 21일, 앨범 ‘춘향(春香)’이 발매 될 예정이다. 고영열은 이 앨범에 대해 "피아노와 목소리를 동시녹음하며 제 혼과 춘향과 몽룡의 혼이 담겨있는 앨범”이라고 밝혔다. 또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제가 생각한 가장 의미 있고, 멋있는, 많이 알았으면 하는 대목들로 구성해 보았다’고 전했다. 앨범명과 동일한 이번 공연 ‘춘향(春香)’은 춘향가의 눈대목(판소리의 중요한 대목)을 한데 모은 앨범으로, 고영열이 선정하고 새롭게 재해석해 구성하였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춘향가를 직접 편곡해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노래했으며, 80개가 넘는 춘향가 대목 중 대중적으로 그리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대목의 선율과 가사에 특히 집중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따뜻한 봄 날씨가 싱그러운 주말, 남산국악당에는 많은 관객이 자리했다. 무대에는 피아노 한 대가 우직하게 덩그러니 서 소리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고영열이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본인이 피아노 병창을 하게 된 계기와, 이번 공연, 그리고 춘향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후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법을 함께 익혀, 어릴 적부터 스스로 북을 치며 소리를 공부해 나갔다고 한다. 더불어 피아노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며 소리를 얹는 작업을 하여, 자연스레 장단과 화성의 조화 가운데 소리를 연주하는 피아노 병창 소리꾼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이번 공연에서 노래에서 그림이 보여지는 판소리 ‘이면’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가 해석하고 그가 그려내는 춘향가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관람하였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함께 무대가 밝혀지고, 고영열의 목소리로 방자와 몽룡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그의 아니리는 일반 판소리 아니리와는 사뭇 달랐다. 마치 시를 읊는 듯 차분하고 잔잔하게 소리의 배경을 전하고, 이야기하며 따스한 감상을 끌어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피아노 선율은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따스한 봄 같았다. 아련한 옛사랑의 추억을 그리는 듯한 그의 무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약 70분간 고영열은 쉬지 않고 피아노를 치며 소리를 했다. 그의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가사와 피아노의 조화로움, 그리고 집중도 높은 연기였다. 두 번째로 불린 ‘백백홍홍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은 낭만적이고 대중적인 피아노 코드와 선율이 덧입혀져 그 아름다운 가사가 더욱 도드라졌다. 하얗고 붉은 꽃이 만발하게 피었다는 뜻의 ‘백백홍홍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은 춘향이 그네 타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상되었다. 또 몽룡이 춘향이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순간이 따스하고 사랑스런 피아노와 고영열의 음색으로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였다. 특히 ‘백백홍홍난만중’ 후렴구를 반복할 때에 반복적인 피아노 패턴을 다이나믹하게 변화 주어 연주함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그의 음악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곡 중 하나인 ‘사랑가’가 불렸다. 3박으로 구성된 왈츠 패턴으로 피아노가 발랄하게 연주되고, 그 위에 고영열의 고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덧입혀졌다. 봄의 왈츠가 연상되듯 리듬을 타다가도, 풍성한 피아노와 질러내는 소리의 반복에 집중력이 더해졌다. 특히 고영열 특유의 낮고 발라드틱한 목소리는 음악에 흠뻑 빠지게 해 주었다. 그는 사랑가를 부를 때 노래 속의 감성을 더 잘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감성은 그의 연극적 연기가 잘 덧입혀져 몽룡과 춘향의 사랑을 그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냈고, 피아노 코드 진행과 노래의 기승전결을 달리 줌으로써 풍성하고 감성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다. 고영열은 피아노 반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앞서 경쾌하고 따스하던 사랑가가 끝난 후에 불린 ‘이별가’는 슬프고 아린 느낌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몽룡이가 떠나는 장면, 춘향이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라며 질러내는 부분은 그가 표현하는 슬픔의 감정이 마음 깊이 전해졌다. 이어 춘향이가 구슬프게 우는 부분은 소리의 전통적 어법을 활용한 구음으로 질러내 슬픔을 구사해 냈다. 이 때 왼손은 피아노의 패턴을 연주하고, 오른손은 연기하듯 뻗어냈는데, 마치 하나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았다. 원래는 빠르고 경쾌한 장단으로 불리는 ‘돈타령’은 서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으로 편곡되어 고영열의 새로운 해석 기법이 돋보였고, ‘쑥대머리’는 하행하는 코드 진행을 통해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피아노 연주 구성이 비슷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3박 왈츠 진행과 보이싱(피아노 연주에서 코드의 구성음을 배치하는 방법)은 거의 동일하여 뒤로 갈수록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았고, 같은 선율에 가사만 달리 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색다른 진행을 꾀한 곡도 있었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대부분 뉴에이지 느낌의 서정성을 토대로 연주되었는데, 어떤 곡들은 재즈나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마이너(Minor)코드 진행에 이국적인 그루브를 겸하여 창의적인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또한 모두 거의 동일한 분위기나 패턴으로 이루어졌고, 장단 요소나 전통 음악적 어법이 피아노에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더 다양한 패턴이나 새로운 화성/리듬적 요소가 가미된다면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무대보다 더 확장된 그만의 독보적인 음악이 되리라 생각한다. 소리꾼 고영열은 2020년 월간객석 인터뷰를 통해 ‘뿌리가 흔들리면 그 어떤 음악도 다양하게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도 계속 전통적인 판소리를 연구하고 연습한다’고 전했다. 다양한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들으며 그 모든 게 본인의 자양분이 된다고 밝힌 그의 이번 ‘춘향(春香)’ 공연은, 한 폭의 그림 속 동화 같은 춘향과 몽룡을 마주하듯 꿈결 같고 아름다웠다. 이 시대의 감성이 덧입혀져 새롭게 해석된 고영열의 춘향과 더불어, 앞으로 그가 새롭게 만들어 갈 우리 음악이 어떤 빛을 발하며 감동을 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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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이 있다’: 소리극 ‘체공녀 강주룡’[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소리극 '체공녀 강주룡'이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졌다. ‘체공녀 강주룡’은 제2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박서련 작가의 장편소설을 판소리로 각색한 공연으로, 고공농성을 이끈 노동운동가 강주룡의 이야기를 여덟 명의 소리꾼이 그려냈다. 이 공연은 지난해 초연 이후 1년 만에 재공연되었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창작 활동을 하며 시대와 삶을 노래하는 전통공연예술단체이다.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노동자의 인권과 안전한 노동 환경에 대해 조명해 온 그들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바닥소리의 언어로 풀어내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체공녀(滯空女)’라는 말은 1931년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강주룡을 가리키는 말로 당시 신문·잡지에서 두루 쓰였다. 강주룡은 독립운동하던 남편을 여의고 고무공장 여공으로 일하다가, 임금이 삭감되자 파업을 주도하며 맞선 여성 노동운동가다. 해방을 외치던 중 일제 경찰의 간섭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강주룡은, 1931년 광목을 찢어 만든 줄을 타고 12m 높이 을밀대로 올라가 ‘여성해방’과 ‘노동해방’을 외쳐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공연은 강주룡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창작 판소리로 그려냈다. 창작집단 LAS의 대표 연출가 이기쁨이 지난해에 이어 연출을 맡았고, 김봉순 안무가가 안무를 담당했다. 음악은 김승진 음악감독이 참여했는데, 건반과 기타,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등 서양악기를 주로 활용하였다. 국악기 연주자로는 북과 장구 등 타악기를 담당하는 고수가 유일했다. 무대에는 가운데 중심축을 기준으로 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 있고, 둥그렇게 이동시킬 수 있는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좌측 편에는 악사들이 자리했다. 무대가 열리고, 강주룡 역을 맡은 강나현 소리꾼이 나와 인사한 후 또 다른 강주룡들을 무대로 불러들였다. 이 공연의 독특했던 점은, 강주룡이 여러 명으로, 일인다역을 맡아 연출됐다는 것이다. 소리꾼들은 강주룡이 되었다가, 주변인이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냈다. 다섯 살 어린 남편에게 시집가는 스무 살 강주룡을 기점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인생이 조명되었다. 모든 삶을 다 살아온 마지막 강주룡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을밀대에 올라앉아 1막의 강주룡, 2막의 강주룡, 3막의 강주룡이 겪는 서로 다른 일련의 사건과 감정을 지켜보았다. 여러 나이와 여러 모습의 강주룡이 시간과 때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을 겪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표현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원작에서는 강주룡이 한 사람으로 표현되었지만, 공연에서는 극이라는 특성상 더욱 상상력이 가미되어 새롭고 신선한 방법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더욱 깊이 있고 색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주 작은 것에서 아주 큰 것이 난다. 난다. 난다. 날아오른다.” 모든 소리꾼이 함께 합창하는 서막으로 무대가 열렸다. 크게 여겨지지 않던 여성 강주룡이 결국 한 마리의 용처럼 차올라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암시한 힘찬 노래였다. 악기는 풀 세션(Full Session)으로 다 함께 합주했다. 타악기를 제외한 모든 악기는 서양악기였지만, 굿거리장단이 중심이 되어 강세를 표현하고, 힘차고 경쾌하면서도 우직한 분위기를 조성해 냈다. 공연은 시간의 흐름으로 빠르게 전개되었다. 이 무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무대장치였다. 강주룡이 겪는 일련의 사건이 하나하나 지나가고, 장면이 바뀌면서 중앙에 놓여있는 구조물은 배우들에 의해 시계방향으로 반복해서 돌아갔다. 이 장치는 ‘나’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살아온 강주룡의 삶의 궤적을 모티브로 하여 상징화하였다고 한다. 다섯 살 어린 신랑을 맞고, 남편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독립군 임시기지에서 생활하던 젊은 강주룡의 시절을 그린 1막에는, 아련하지만 밝고 사랑이 가득한, 그리고 힘이 있던 그의 청춘이 묻어있었다. 사랑을 지키고자 노력하면서도, 또한 독립군으로서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드는 그의 용기는 훗날 그가 을밀대 위에서 보여 줄 용기와 맞닿아 있었다. 1막은 강주룡이 남편 뜻에 따라 독립군을 떠나며 끝이 난다. 그들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강주룡은 본인이 느끼는 슬픈 감정을 모두 쏟아 내는데,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던 을밀대 위 나중의 강주룡이 ‘너, 그렇게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럴 걸 생각만 했지’라고 정정한다. 그러자 젊은 강주룡은, ‘아, 그랬던가’하고는 할 말을 삼킨 채 남편을 떠난다. 결국 평생을 후회하고 힘들어하게 된 그의 잊지 못할 절절한 슬픔은 아마 많은 이들 또한 겪어 보았을 순간이리라. 그 가슴 아픈 사연은 관객 모두를 눈물짓게 했고, 과거의 강주룡과 현재의 강주룡이 시간을 뛰어넘어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장면은 그 어떤 연출보다도 깊이 와 닿았다. 2막은 독립군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잃고, 억울하게 구치소에 갇힌 강주룡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정종 소리와 장구의 동살풀이 장단에 맞추어, 말하듯 슬픔의 감정을 노래하는 판소리적 연출이 훌륭했다. 강주룡은 구치소에서 나온 후 홀로 평양으로 가 평원 고무공장에 취직한다. 공장에서 그는 동무들을 만들고, 언젠가 모던걸(modern girl)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즐겁게 살아가고자 한다. 극은 전체적으로 슬픔과 안타까운 요소로 많이 진행되었으나, 그 안에 유쾌함과 재미를 유발하는 대사, 노래, 음악 효과 또한 지속해서 드러내 지루하지 않은 무대를 꾸려나갔다. 특히 음악의 경우, 앞선 서곡에서 그러했듯 계속해서 장단을 중심으로 연주되었는데, 기타의 스트로크(Stroke, 기타 줄 전체를 아래 혹은 위로 치는 것)기법으로 장단의 강세를 표현하거나, 5박으로 이루어진 엇모리장단을 활용하는 등 전통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다. 바이올린은 피치카토(Pizzicato, 연주 시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서 발현악기처럼 연주하는 방법)로 가야금 음색을 흉내 내 한국적인 느낌의 경쾌함을 주기도 했다. 또 판소리 선율을 따라 연주하거나 다양한 시김새를 표현해, 바이올린의 부드러운 음색과 전통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지게끔 하였다. 강주룡은 공장에서 일하며 비인간적인 대우와 폭력에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 삭감 철회를 요구하는 파업단의 연설을 듣는다. 이때 강주룡은 ‘동지’라는 단어에 뜨겁게 반응하는데, 이전에 독립운동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속해있는 공동체의 더 나은 날을 위해 강주룡은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 3막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불꽃처럼 운동에 앞장서는 세 번째 강주룡은 이전의 강주룡보다도 더욱 힘이 넘치고, 물러섬 없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는 기본권과 인권을 지켜내는 것과, 모두가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그의 확고한 투쟁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다 함께 팔짱을 끼고 함께 연대하며 나아갔다. 계속해서 넘어지고, 또 고꾸라지더라도 그들은 다시 일어났다. 물론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도, 걱정도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용기 있게 결단하며 나아갔다. 소리북 한 대의 단순하지만 힘 있는 반주와 함께 큰 소리로 외치며 노래하는 소리꾼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강주룡은 을밀대에 올라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무대는 그의 사망에서 시간을 거꾸로 되감아 을밀대에 올라앉은 강주룡을 그려냈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주체적인 여성 강주룡은, 불공평하고 참담한 이 세상에 우직하게 맞섰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90여 년 전 강주룡이 처했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누군가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린 아직도 불평등과 소외,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연대하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수많은 강주룡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계속해서 꿈꾸며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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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탄탄한 국악관현악: ‘작곡가 이강덕[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은 지난 7~8일 기획공연 ‘작곡가 시리즈 Ⅲ’을 선보였다. 작곡가 시리즈는 창작국악의 토대가 된 작곡가를 선정해 의미를 되새기는 무대로, 이번 공연은 창작국악 1세대, 작곡가 이강덕의 작품만으로 꾸며졌다. 이강덕은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이왕직아악부 아악수를 거쳐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재직했다. 연주자이자 작곡가, 지휘자로 활동한 그는 1962년 관현악 '새하늘'로 국립국악원 신국악 작곡 공모에 당선, 작곡가로 등단한 후 관현악, 협주곡, 중주곡 등 80여 편의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금도 가장 널리 연주되고 있는 대표 관현악곡과 협주곡이 총 5곡 연주되었다. 7일에는 가야금 서은영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수석, 피리 진윤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해금 이동훈 전북대 교수가, 8일에는 초연 당시 협연자들이었던 가야금 이재숙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피리 이종대 부산대 명예교수, 해금에 홍옥미 지영희류 해금산조 보존회장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 둘째 날이었던 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는 많은 관객들이 자리했다. 무대를 열어낸 첫 곡 ‘송춘곡’은 ‘봄을 칭송한다’는 제목처럼 봄날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감각으로 그려냈다. 경쾌한 선율은 중간중간 반음계를 내어 특수한 느낌을 내기도 했는데, 마이너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단순하고 깔끔한 진행이 돋보였다. 이 곡은 또한 짧은 구로 이루어진 단일 주제를 가지고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양하게 변형 및 발전시켰다. 장단과 리듬에 변화를 주며 흥겨운 느낌을 내다보니 지루할 틈 없었고, 국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음계와 선법을 활용한 진행은 한국적이고 다채로운 느낌을 주었다. 음악적인 구조 또한 탄탄했다. 관현악기들의 주고받는 부분이나, 서로 비워주고 채워주는 구간이 확실하여 관현악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 어느 악기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균형 있게 비중을 둔 깔끔한 곡이었다. 본격적으로 협주곡이 시작되었다. 처음 독주자로 나선 해금 연주자 홍옥미 명인이 연주한 ‘해금협주곡 4번’에는 경기지방 무속 가락을 근간으로 만든 지영희류 해금산조의 특징이 담겨있었다. 관현악은, 진양부터 자진모리장단까지 산조 장단의 흐름에 따라 해금의 특수한 표현에 맞추어 풍성함을 만들어 내거나 해금을 받쳐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다. 홍옥미 명인의 해금 연주는 화려하거나 멋 내는 느낌보다는 소박하면서도 힘이 있고 깔끔한 성음이 돋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농현과 선율, 과하지 않은 표현과 흥청대는 장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특히 그가 연주하는 평우조(화평하고 평온한 조)는 발랄하면서도 우직했고, 마지막 푸는가락에 이르러 연주된 꺾거나 떨어내는 표현은 민속악적 색채가 짙게 묻어나며 명인의 오랜 공력이 돋보였다. 세 번째로 ‘메나리조 주제에 의한 피리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경기시나위 보존회장을 지니고 있는 명인 이종대의 피리 연주로 진행된 이 곡은 신명 나는 굿거리장단으로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떠오르는 민속적이고 밝은 선율이 돋보였으며, 시원하게 뻗어내며 연주하는 피리 선율이 매력적이었다. 이 곡은 강원도 메나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으로 토속적인 민요적 요소가 강했고, 빠른 패시지로 진행되는 순차 진행이 많았다. 이강덕 명인은 간드러지고 여유 있는 호흡으로 물 흐르듯 연주하였고, 구성진 피리 농음과 흘러내려 떨어내는 메나리조의 선율적 특징을 잘 살려내어 연주해 냈다. 더불어 관현악 또한 안정적이고 깔끔한 연주로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했다. 이강덕이 작곡한 협주곡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바로 가야금을 위한 협주곡이다. 이날 연주된 ‘가야금 협주곡 1번’은 가야금을 위한 협주곡으로는 제일 처음에 작곡된 곡이다. 또 독주 악기 혼자 기량을 발휘하는 카덴자(Cadenza)가 이 곡에서 처음으로 창작국악에 사용되었다. 둘째 날 무대에서는 이재숙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가야금 협연자로 함께했다. 이재숙 명인은 깊은 울림이 가득한 연주로 심금을 울렸고, 여유롭고 힘 있는 연주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굿거리로 시작하여 4/4박자, 중모리, 굿거리, 카덴차, 동살풀이로 계속해서 바뀌는 장단 속에서, 가야금의 다양한 표현이나 변화구를 감상할 수 있었다. 장단에 맞추어 연주하는 가야금 연주와 더불어 장구의 장단이 계속 반주로 함께 했는데, 황병기 가야금 연주곡이 연상되기도 하며 연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재숙 명인의 가야금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이었다. 겉으로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듯 보이나, 그 안은 매우 깊고 단단했다. 무대는 ‘염불 주제에 의한 환상곡’으로 마무리되었다. 작곡가 이강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고인이 극락세계에서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뜻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모든 악기가 함께 짧은 주제 선율을 강하게 연주하며 곡이 시작되었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밝고 화려하며, 경쾌함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 안에 악기들이 번갈아 가며 질러내는 부분이 많이 등장했다. 이는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마음이 반영된 듯 느껴졌다. 곡이 진행되는 가운데 중간중간 들리는 징 소리와 방울, 목탁 소리, 그리고 민속악적 색채가 짙은 장단과 선율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陁佛)’의 가사를 노래하는 육자염불이 연상되었다.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느린 무장단 안에 피리와 대금이 서로 번갈아 가며 독주 선율을 연주하였는데, 메나리조를 중심으로 연주된 선율에는 슬픔과 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기리는 작곡가의 마음이 묻어났으며, 깔끔하고 균형 있는 장단과 선율 진행은 자유롭고 탄탄했다. 이강덕은 음악과 전통에 관한 이해도가 높은 작곡가였다. 그의 음악은 기승전결이 뚜렷했고, 완성도가 굉장히 높았다. 어느 하나의 악기에 치우치지 않고, 각 악기의 음색과 음높이를 잘 활용하여 풍성하고 탄탄한 음악적 구조를 만들어 냈다. 또 장단과 조, 악기의 특징을 잘 활용했으며, 단순한 선율적 리프(일정한 코드 진행을 반복하는 반복구)를 사용, 발전시켜 주제 테마로 만들어냈다. 그 테마를 반복하여서 들려줌으로써 관객들은 음악을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공연을 통해 전통 악기가 지닌 본연의 소리와 조화를 느껴볼 수 있었다. 요즈음 새로 작곡되는 관현악은 서양 음악에서 온 코드 진행이나 화성법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하지만 이강덕의 음악은 화려하거나 서정적이기보다는, 악기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음색, ‘조’와 ‘장단’을 집중적으로 활용한 단순하고 깔끔한 진행을 선보였다. 창작국악 1세대 작곡가의 음악을 통해, ‘기본’과 ‘전통 본연의 소리’에 집중하며 국악 관현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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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 자유로움, ‘즉흥음악축제’[국악신문 정수현 국악전문기자]=지난 2월, 서울돈화문국악당과 남산국악당은 전통음악,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음악적 협업을 통해 자유로운 즉흥음악을 선보이는 '한국즉흥음악축제'를 닷새간 선보였다. '한국즉흥음악축제'는 서울돈화문국악당 '프린지 콘서트'를 시작으로, 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진 '메인 콘서트', '한옥 콘서트', '나이트 콘서트', '넥스트 페이지 콘서트'까지, 총 5개의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2023년 첫선을 보인 '한국즉흥음악축제'는 국악을 비롯하여 클래식, 재즈, 전자음악, 현대무용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이 선보이는 즉흥음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종합예술공연이다. 올해도 아담한 한옥에서 자연 음향으로 즐기는 '한옥 콘서트', 국악기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실험적인 무대를 만날 수 있는 '나이트 콘서트', 전년도 서울돈화문국악당 프린지 아티스트 중 선정된 신진 즉흥 음악가와 즉흥음악계 거장의 합동무대로 선보이는 '넥스트 페이지 콘서트'까지, 한층 다양해진 볼거리로 관객들을 찾았다. 예술감독은 전년도와 같이 대금 연주자 유홍이 맡았다. 그는 "한국 음악계 안에는 즉흥음악에 대한 공연, 수요, 관심이 꾸준하게 있었지만,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경향이 있었다”며, 다양한 현장을 아우르는, 함께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축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즉흥(卽興)’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는 감흥’이라는 뜻으로, ‘즉흥연주’란 즉석에서 연주자가 직접 작곡과 동시에 자발적 연주를 병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즉흥연주는 특히 재즈 음악의 주요 요소로 부상하였고, 연주자의 자발적 창의성을 위한 필수요소로까지 확대되었다. 국악계에도 즉흥의 바람이 불어오며, 국악기나 국악 어법을 활용한 즉흥 음악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번에 축제에서 마주한 무대는 28일 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진 메인 콘서트로, 한 세션당 30분 정도로 이루어진 즉흥 음악을 총 세 세션 관람하였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자유 즉흥과 현대음악, 실험음악을 아우르는 피아노 기타 듀오 비헤디드와 대금 연주자 백다솜,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과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박재린이 함께 했다. 바람 소리와 트레몰로 등을 활용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며 시작한 이 무대에서 연주자들은, 선율에 집중하기보다 음색과 다이내믹에 더욱 집중하였다. 대금은 자연스러운 바람 소리와 혀치기 기법 등을 활용하였고, 바이올린은 활대를 빠르게 쳐 내거나 고음부에서 아슬아슬한 소리를 내며 기량을 맘껏 뽐냈다. 피아노는 라단조(Dminor)를 중심으로 저음부를 비롯한 음의 흐름을 풍성한 음색으로 다른 악기들의 연주를 뒷받침해 주었다. 피아노는 중간중간 빠르고 강렬한 짧은 주제를 쳤는데, 그걸 신호로 악기들은 조금씩 주제를 바꾸어 연주했다. 사운드 조합이 특히 잘 어울리던 이 세션은 화성 진행을 뚜렷하게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동시에 카덴자(Cadenza)처럼 자유롭게 악기의 매력을 드러내고, 서로 공간을 내어주며 조화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또 프리재즈(Free Jazz) 같은 혼돈 감과 균형 잡힌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는 악기들을 받쳐주다가도 어느 순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처럼 강하고 휘몰아치는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때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연주를 하던 악기들과 어우러짐은 서로 다른 장르의 형태가 묘하게 조합된 느낌을 주어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두 번째로 세션은 세상을 좀 더 아릅답고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꿈꾸는 가야금 연주자 주보라와 다양한 예술가들과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만들어 활동하는 음악가 하림이 함께 했다. 이들은 연주하기 전 관객들과 길게, 그리고 깊게 대화하고 소통했다. 두 연주자는 서로 함께 ‘즉흥이란 무엇인지’ 많이 대화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편안한 새로운 결과물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기 위해, 숨을 멈추게 하는 음악이 아닌 숨을 쉴 수 있는 소리를 보여주는 데 치중하였다고 전했다. 호흡과 닮은, 계속해서 숨을 쉬는 악기 슈르티박스(SHRUTI BOX)가 연주되며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하림은 관객들에게 호흡하며 ‘아-’하고 함께 소리내도록 유도했다. 숨 쉬는 악기 선율 위로 관객석과 무대의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쌓여 갔다. 하림은 동양적 스케일의 민속음악 선율을 허밍으로 노래했고, 모두가 함께 소리를 쌓아 나갔다. 이후 하림의 다양한 세계 민속 악기 몇 대의 연주와 주보라의 따스한 음색이 만들어 내는 허밍, 영롱한 가야금 선율과 다양한 기법, 그리고 몸짓이 얹어졌다. 그들은 자유로웠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소리를 듣고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며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이들의 음악은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자유로운, 말 그대로 ‘숨을 쉴 수 있는 음악’을 선보였다. 짜이지 않은 틀 속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해 그들 내면의 소리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그 순간, 감흥이 일어났다. 마지막 세션은 네 명의 연주자가 함께했다. 정가의 전통적인 멋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전통가객 강권순 자유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실험적인 사운드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김은영, ‘동시대성’을 기반으로 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첼리스트 지박, 그리고 섬세함과 파격적인 에너지로 새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양금 연주자 최휘선이 함께 만들어 냈다. 첼로의 중후한 부드러움과 풍성한 피아노, 채를 활용한 다양한 기법으로 다양한 색채를 드러낸 양금과 기존 정가에서 탈피한 특색있는 목소리는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화성적이거나 대중적인 음악적 패턴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악기 고유의 음색을 집중도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이들의 무대를 보며, 기본이 탄탄한 연주자들이기에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주자들은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화성적이고 선율적인 음악을 수없이 연습하고 체득하였기에 그 음악을 발판 삼아 그들 내면에 있는 소리를 즉흥적으로 표현할 수 있던 것이다. 특히 그 기본기의 발전이 도드라졌던 것은 가객 강권순의 소리였다. 분명 전통 정가의 음색으로 부르는 듯하나, 억지로 음을 끊어내거나 압박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 기존의 정가를 자유롭게 변형시켰다. 그의 소리는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재즈 스캣(Scat)이 연상될 정도로 다양하고 경이로웠다. 연주자들은 강인하고 확고했으며, 소리에 힘이 있었다. 음악을 이해하고 당당히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 무대는, 안개 낀 숲속 오솔길 같은 서정적이고 오묘한 느낌 가운데 정가가 조용히 흘러나오며 마무리되었다. 그들의 음악에는 확고하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 무대를 본 관객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들려오는 지하철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효과음적 소리가 모두 음악으로 들리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즉흥’의 매력은 바로 그곳에 있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시간 예술 중, 가장 자유롭게 연주자의 음악과 악기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 작년 축제는 난해하고 어려워 온전히 그 음악을 받아들이기 다소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는 대중들과 소통하며 즉흥 음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노력하고, 연주자들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소리와 움직임을 더욱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겨내며 나만의 즉흥 음악을 발견하는 것. 예술을 통한 윤택한 삶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이 음악이 더욱 일조할 수 있도록, 현대의 예술가들과 관객들이 함께 노력하며 그 즐거운 판을 만들어 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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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완의 피리 열 번째, ‘숨과 쉼’을 나누다[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2월의 끝자락, 지난 27일 서울돈화문국악당이 2024 공동기획 프로젝트의 세 번째 공연으로 ‘박치완의 피리 열 번째, 숨과 쉼’을 선보였다. 박치완은 전통음악에서부터 현대음악까지 넓은 연주 스펙트럼을 가진 피리 연주자로,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지도단원으로 재직 중이다. 활발한 연주 활동을 통해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박치완의 이번 독주회에서는, 다채로운 피리 창작 음악 레퍼토리를 통해 피리의 고유한 소리를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20세기 초기의 창작음악 작품부터 근래에 작곡된 작품까지 총 5곡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곡으로 작곡가 이상규가 시인 신석정의 시 ‘청산백운도’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작품으로 알려진 ‘피리 독주곡 청산(靑山)’이 연주되었다. ‘청산(靑山)’의 곡 소개는 이렇다. ‘山은 급할 것이 없고, 바쁠 것도 없다. 山은 시기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山은 늘 넉넉히 그렇게 서 있다. 이러한 山의 모습을 피리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박치완은 담백하고 깔끔한 음색으로 곡을 연주 해 나갔다. 이 곡은 특히 ‘나니레’를 비롯한 다양한 정악 시김새를 활용하여 한국적인 색채가 짙은 우직함이 돋보였다. ‘청산(靑山)’은 정해진 장단의 틀은 없지만 자유로운 박 속에서 세 번 전조 되고, 원조로 돌아와 끝났다. 박치완은 속소리와 질러내는 소리를 넘나들며 뻗어내며 안정적이고 편안한 피리의 음색을 보여주었다. 급하지도, 바쁘지도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넉넉히 서 있는 산의 모습이 마음을 두껍게 채워주는, ‘숨과 쉼’이라는 무대의 제목과 잘 어우러지는 곡이었다. 두 번째로 작곡가 원일의 ‘간(間)’이 연주되었다. 곡이 연주되기 전, 박치완 연주자가 관객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가 영상에 띄워졌다. 메시지는 곡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반복되었다.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있는지 물으며 쉼을 통해 여유를 갖자는 그의 마음이 가득 담긴 내용이었다. ‘ 간(間)’은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로움이 특히 돋보이는 아름다운 곡이다. 진하고 센 색채와 연한 바람 소리가 조화를 이루고, 특히 옅은 속소리와 뻗어내는 소리가 번갈아 가며 빠르게 연주되는 부분에서는 피리가 보여줄 수 있는 음색적인 매력이 도드라졌다. 가야금과 피리는 서로 다른 프레이즈를 연주하는 듯하면서도 하나로 얽혀 들어갔다. 가야금과 함께 연주되는 ‘간(間)’은 기존에 기타로 연주되던 원곡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는데, 공간감과 울림이 가득하던 원곡에 비해 마이크 없이 피리와 가야금 본연의 소리로 단조롭지만 깔끔하고 우직한 색다른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박치완 연주자는 고음을 뻗는 부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갈함과 벅찬 감정을 전해주며 덤덤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토마스 오스번(Thomas Osborn)의 ‘비상’은 끊이지 않는 긴 숨에서 오는 집중도가 강했다. 굵게 떨어내다가 사그라들고, 음을 흘러내리고 끌어올리는 기법이 다양하게 활용된 이 곡은, 아슬아슬하지만 아름다운 피리의 음색이 특히 돋보였다. 반음계와 장구의 혼합 박 리듬이 합치되며 서로의 공간을 채워나갔고, 정형화된 선법(mode)이 드러나지 않고 음 하나하나의 진행이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같은 멜로디 리프를 계속 반복해서 들려주고, 그 주제에 살을 붙여 조금씩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작지만 확고한 ‘비상’을 나타냈다. 희망차기보다는 음울한 분위기의 진행과 점점 작아지는 끝맺음은 일반적으로 희망차고 긍정적인 ‘비상’과는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오히려 너무 낙관적이거나 밝게 날아오르기보다 낮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한 사람의 ‘비상’을 표현하는 듯 해, 힘을 빼고 찬찬히 날아오를 수 있다는 용기가 마음에 따스하게 와닿았다. 작곡가 류형선의 ‘나무가 있는 언덕’이 네 번째로 연주되었다.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선율과 피리의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결을 마주할 수 있던 이 무대는 가야금과의 연주로 따스함과 편안함을 선보였다. 박치완은 다이나믹하고 현란한 기법보다는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연주에 치중하였다. 한 음 한 음을 소중히 여기며 음악을 책임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만큼 피리와 음악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지막 곡이 연주되기 전, 박치완 연주자가 직접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무대를 소개했다. 열 번째 독주회인 이번 무대에서 그는, 각박한 삶을 살아가며 여유가 없는 본인을 돌아보며 관객들과 함께 여유, 그리고 쉼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유쾌하면서 따스한 그의 말에는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그가 연주한 곡은 자작곡 ‘0.83_숨의 시작’이었다. 딸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 그 신비로움에 벅차 만들었다는 이 음악은, 심장 박동 소리가 장구의 궁편 연주로 이어지며 자유롭고 여유로운 선율로 편안한 흥겨움을 전해주었다. 치열하고 분주한 일상에 듣는 그의 피리 소리는 무엇보다도 따뜻했다. 피리의 두껍고 부드러운 음색을 듣고 있자면, 숨을 크게 내쉴 때 몸과 마음이 벅찬 공기로 가득 차는 느낌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어느 순간 힘을 내기 어려운 때가 찾아온다. 하지만 나무를 바라보듯, 나의 자리에서 나의 시간으로 비상하듯, 쉼을 챙겨 피리 소리처럼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게 오늘의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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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로’, 박종기와 김계선의 예술혼 극으로 승화[국악신문=정수현 전문기자] 국립국악원은 지난 17일부터 27일까지, 2024년 첫 기획공연으로 음악극 ‘적로’를 풍류사랑방에 올렸다. ‘적로’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금 명인 박종기(1880~1947)와 김계선(1891~1943)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작품이다. 배삼식 작가, 최우정 작곡가, 정영두 연출가가 참여한 이 공연은 2017년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국립국악원의 민간단체 우수 작품 재공연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선보여졌다. 박종기는 민속악 대금산조 명인으로, 판소리에도 조예가 깊어 진도아리랑의 선율을 정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계선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국립국악원 전신) 소속 단원으로 정악 대금 명인이었다. 배삼식 작가는 가상의 ‘산월’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두 명인이 젊은 시절 인연을 맺었던 그녀와의 아름다웠던 한때를 추억하며, 치열하고 뜨거웠던 젊은 날을 더듬어가는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 두 인물의 역사적 사실 기반에 작가적 상상을 더 하여 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경성살이를 마치고 고향인 전남 진도로 내려가려는 종기를 두고 계선이 가지 말라며 만류하고, 그러던 중 두 사람 앞에 난데없이 그들을 모셔 오라는 인력거가 등장한다. 그들이 인력거를 타고 향한 곳에는 두 예술가가 십수 년 전 만나 사랑했던 기생 산월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산월이 있었다. 산월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은 덧없이 빠르게 흘러간 옛 시절을 추억하며 각자가 겪었던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로 부르고, 이야기하며 애틋한 추억을 되새긴다. ‘적로’는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국립국악원의 풍류사랑방의 느낌과 잘 어울렸다. 간접조명이 활용된 작은 무대에는 대금이 연상되는 시원한 느낌의 나무의 잎이 나부끼고, 따뜻한 술상이 차려있는 선비의 아늑한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1940년대 경성이 연상되는 스윙(Swing) 재즈가 경쾌하게 흘러나오며 무대가 시작되었다. 음악은 대금 두 대와 건반, 아쟁, 클라리넷, 타악기, 베이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각 장면에 어울리는 다양한 장르의 창작곡이 연주되었다. 연주자들은 실루엣이 보이는 정도의 발 뒤에서 세 명의 배우를 받쳐주며 다양하고 조화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박종기와 김계선은 옛 시절 함께 했던 그리운 산월을 생각하며 지난 세월 그들이 지나온 어린 시절, 대금과 함께한 시간 등을 노래하고, 절절하게, 혹은 기쁘게 불꽃같던 그들의 삶과 예술혼을 구성진 가락의 소리로 채워나갔다. 대사와 소리는 때로는 유쾌하며 해학적이고,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고 묵직한 슬픔을 던지기도 하며 그들의 인생을 반추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이 옛 추억을 그리며 행복해하는 부분은 전통 어법이 가미된 창작 판소리와 뮤지컬 느낌의 창작곡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시절이 좋구나’의 경우 스윙 베이스에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직관적인 가사와 유쾌한 선율로 뽑아내고,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코드 진행에 세 명의 배우가 각자 다른 파트를 노래하며 뮤지컬 창법으로 부른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장르의 구분이 모호했다는 것인데,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한 시도는 좋았으나 소리극의 매력이 반감되고 이질적인 느낌을 받아 아쉬웠다. 하지만 창작 소리의 경우 한국적이고 서정적이며 고즈넉한 분위기의 가사가 특히 마음을 울렸는데,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설움이 아닌 서늘한 감정을 느꼈다는 문장이나, ‘팔자소관’을 이야기하며 젓대쟁이로서의 삶을 묵묵히 그려내는 모습에서 예인들의 예술혼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또 산월 역을 맡은 가객 하윤주가 중간중간 부르는 애절한 정가 풍의 노래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워 무언지 모를 추억에 젖게 해 주었다. 음악의 경우 대금을 두 대 활용하여 연주한 것이 흥미로웠다. 두 악기가 다양한 기법을 연주하며 다이내믹하게 어우러져 대금의 매력을 선사해 주었고, 이는 대금 연주자였던 두 예인을 나타내는 극과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대금 두 대의 소리가 다양하게 활용된 곡은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각 테마에 맞춘 주제 선율이 극을 관통하여 반복해서 들려줌으로 이 극이 지닌 특색이 두드러진 것도 음악의 특징 중 하나였다. 또 클라리넷을 활용하여 오묘하면서도 어두운 색채를 함께 드러내 무언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영화 음악적인 느낌을 준 것이 신선했는데, 극의 초반부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이슬’을 형상화한 피아노 선율은 극 말미에 과거의 산월이 등장하며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장치로 활용되어 음악적 탄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극 ‘적로’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새롭게 각색된 이야기 전개가 신선했고, 대중들에게 흥미를 느끼게 할 만한 요소 또한 많았다. 그러나 두 예인의 예술혼이나 인생보다는 새로 만들어진 ‘산월’이라는 인물과의 추억에만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 플롯, 또 과잉 감정으로 치닫는 전개가 아쉬웠다. 갑작스레 극적으로 전개된 내용과 슬픔 어린 느낌으로 연출된 진도씻김굿, 망자 굿에 치중한 장면은 두 예인을 나타내고자 한 것인지, 가상의 인물 산월을 기리고자 한 것인지 모호하여 극이 보여주는 전체적인 주제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극은 실존 예인들의 치열한 예술적 삶이나 무언가 더 발전될 이야기 전개가 아닌, ‘덧없음’에 중심이 맞추어져 모두가 공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기대하기 쉬운 주제, 즉 두 예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보다 생과 사, 공허함에 초점을 맞춤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무대를 꾸려 나간 것은 신선한 시도다. 하지만 그 주제로 발전하기 위한 극적 연출과 전개가 급박하고 어수선해 아쉬움이 남았다. 또 시놉시스나 극 소개에 나와 있는 ‘불멸의 소리를 찾아 한평생을 살아간 사람들, 그 끝에 여울져 맺힌 그들의 예술혼’이라는 주제와도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아 이 극을 이루는 주제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음악극 ‘적로’가 오랜 사랑을 받아 새롭게 연출된 만큼, 앞으로 더욱 다양한 시도와 뚝심 있는 전통의 색채가 동시에 묻어나 발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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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문화재단 한일전통음악, 화합 공존하는 신년음악회(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6일, 정효문화재단과 서울남산국악당은 혼조 히데타로와 그의 제자인 혼조 히데지로, 혼조 히데에이지를 초청, 서울남산국악당에서 2024 한일신년음악회 '한일전통음악의 흥과 멋'을 개최했다. 혼조 히데타로는 샤미센 혼조류를 창시한 일본 샤미센 연주의 대가이다. 정효문화재단 주재근 대표는 이번 공연을 두고 "2024년 한국과 일본 모두 청룡의 힘찬 기운으로 새로운 도약과 상생을 도모하고, 양국의 우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특별 기획공연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까운 나라로, 각국의 전통 예술이 발전하는 데 있어 상호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에 혼조 히데타로가 보여줄 일본 전통문화의 멋을 느끼고, 한국 전통 음악과 어떤 차이나 공통점이 있을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관람하였다. 무대는 총 8곡으로, 혼조 히데타로와 제자들이 연주한 세 곡과, 정재 ‘포구락’, 경기민요 아리랑 연곡, 대금산조, 판소리 흥보가, 설장구 총 다섯 가지 한국 전통 예술 무대로 꾸려졌다. 아쉬웠던 것은 일본 전통 음악으로는 혼조 히데타로와 제자들이 연주한 샤미센, 코큐만 볼 수 있었던 대신 한국 전통 예술은 장르를 나열하는 데에만 애썼다는 것이다. 물론 각국의 전통을 펼쳐내는 느낌으로 만들어진 공연이라고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 전통음악이 교류하고 화합한다는 느낌보다는 개개인 발표회처럼 다양성에만 치중된 느낌을 받았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이 더욱 화합하는 무대로 꾸려졌다면 더 뜻깊은 신년음악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요 소리꾼 김세윤의 사회로 공연이 시작됐다. 이번 공연에는 국회한일의원연맹(의장 정진석) 의원 39명과 정부 인사가 초청됐고, 일본인 관객도 상당수라 일본어로 인사 멘트를 준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김세윤은 유쾌하고 깔끔한 진행으로 쉽게 설명해 주어 무대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첫 무대는 어린이들로 구성된 화동정재예술단의 당악정재 ‘포구락’으로 열렸다. 어리지만 절제 있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한국 무용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김찬래의 경기민요 아리랑 연곡과, 민영치의 서용석류 대금산조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민영치는 재일교포 3세로, 주로 장구 연주자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9년간 서용석 선생에게 직접 사사 받은 서용석류 대금산조를 선보여 대금 연주자로서 매력 또한 드러내었다. 두 번째 무대였던 ‘샤미센-코큐를 위한 "카키로히”’에서는 샤미센뿐 아닌 ‘코큐’ 연주를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샤미센은 일본의 전통 현악기로, 발현악기이지만 손가락으로 뜯지 않고, 바치(撥)라는 채를 이용해 연주한다. 화려함은 덜할 수 있으나 깔끔하고 오묘한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코큐’는 샤미센보다 작은 일본의 찰현악기로, 두 줄로 이루어져 있으며 활을 사용하여 연주해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해금과 비슷하다. 코큐 음색은 일본답기도, 서양답기도 했는데, 바이브레이션이나 다이내믹 부분에 있어서는 마치 바이올린 소리와 비슷했지만,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면서도 끈질기고 동양적인 오묘한 매력이 묻어났다. 신기했던 것은 활로 이어지는 소리를 내는 동시에 현을 뜯어 두 가지 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이하고 다양한 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며 더욱 일본 악기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 곡은 코큐가 주선율을 연주해 나가고, 샤미센 두 대로 리듬 패턴을 연주하거나 함께 어우러지는 진행이었다. 세 연주자는 긴 천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정성스레 악기를 연주했다. 차분하게 예를 갖추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통해 음악에 대한 그들의 진심을 볼 수 있었다. 곡은 평온하면서도 긴장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샤미센 두 대는 기본적으로 거의 같은 패턴의 리듬 형태를 연주했다. 동일한 음을 함께 연주하다가도, 화음으로 나누어지는 등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특히 이 무대는 어딘가 음울하고 기묘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요나누키 선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요나누키’는 일본 전통 음악에서 자주 쓰이는 선법으로, 자연 단음계에서 ‘레’와 ‘솔’이 빠진 ‘라,시,도,미,파’의 다섯 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엔카’에서 많이 쓰이며 우리나라 트로트에서도 그 음계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이 곡에서는 이러한 마이너틱하고 반음계 진행이 많은 ‘요나누키 선법’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처량한 느낌과 일본만의 특수한 색채를 물씬 느껴볼 수 있었다. 판소리 소리꾼이자 한양대 교수인 조주선 소리꾼의 ‘흥보 박 타는 대목’은 관객들의 환호와 즐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시원하고 신명 나는 소리로 관객들과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며 ‘얼씨구’, ‘얼쑤’ 같은 추임새가 무대에 가득 차 마치 판소리의 원형인 ‘마을소리 판’에서 다 함께 즐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수현이 이끄는 조선락광대 단원들이 선보인 ‘우도설장구’ 또한 흥겨움을 더해 주었다. 서로 간의 완벽한 호흡과 깔끔한 타법, 섬세하고 화려한 역동적 에너지는 새해를 더욱 힘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편애’는 혼조 히데타로가 테라야마 슈지의 시 ‘열 가지 색의 사랑’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곡이다. 혼조 히데타로의 샤미센 연주 뒤에는 제자 혼조 히데지로의 풍성한 뒷받침이 있었다. 스승의 음악에 누가 되지 않고자, 또한 더욱 좋은 음악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그의 연주에서 확연히 드러났고, 그 덕분에 분명 샤미센 두 대로 연주하는데도 마치 한 대로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곡에서는 특히 혼조 히데타로가 노래하고 시를 읊어 더 인상적이었다.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치 영화나 극을 보는 느낌을 받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곡 또한 요나누키 선법이 활용되었고, 그에 더해 반음계를 다양하게 사용하여 더욱 풍성한 울림과 화성적 특징을 드러냈다. 마지막 곡 ‘전심’은 2016년, 혼조 히데타로가 내한하여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했을 당시 만들어진 곡으로, 한국과 일본의 교류와 양국 전통음악 계승의 발전을 기원하는 작곡자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 무대에서는 민영치가 장구와 소금을 연주하여 샤미센, 코큐와 함께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였다. 무대는 소금의 강한 바람 소리로 시작했다. 한국적 사운드와 주법, 시김새가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일본 전통 음계나 긴 호흡의 농음 등이 연주되어 마치 일본 전통 관악기 샤쿠하치가 연상되기도 했다. 샤미센의 낮고 간결한 음의 조합, 코큐의 길고 차분한 호흡, 그리고 소금 연주와 장구의 울림이 어우러져 평화롭고 여유로운 감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특징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예(禮)’를 갖추는 숭고한 정신과, 전통 계승 및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명인들의 꾸준한 열정은 각국의 전통 예술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가치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양국의 전통이 앞으로도 지속되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대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화합하고 상생하며 오래된 귀중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 힘으로, 우리는 더 오래, 그리고 함께 예술로 즐거이, 깊이 있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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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무대, 국립국악관현악단 ‘2024 신년 음악회’(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2024 신년 음악회’가 열렸다. 지휘자 정치용의 지휘로 국악관현악 주요 레퍼토리를 선보임과 동시에 하프 연주자 황세희, 국립국악관현악단 타악기 연주자 5인,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크레즐 등의 협연으로 풍성하고 흥미로운 무대를 선사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신년 음악회’는 새해를 우리 음악으로 맞이하고 기억할 수 있는 국악관현악 레퍼토리를 개발하고자 2020년 처음 기획되어 올해로 5년 차에 접어들었다. 매년 국립극장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기획 공연 ‘신년 음악회’는 꾸준히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늘 매진 신화를 이루었고,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과 새로운 시도, 국악 관현악의 정수를 보여주며 풍성한 무대를 선보여 왔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곡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통찰력의 지휘를 보여주는 마에스트로 정치용이 함께했다. 그는 작곡가 윤이상 작품의 국내 초연을 가장 많이 한 지휘자이다. 윤이상의 작품은 보통 서양 관현악 기반의 연주이지만 그 안에 한국의 철학이나 전통 음악 어법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윤이상의 작품을 수없이 연구했을 정치용 지휘자가 국악 관현악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만들어낼지 더욱 기대되었다. 1부는 청룡의 해를 맞아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담아낸 작품을 선보였다. 첫 곡으로 조원행 작곡의 ‘청청(淸靑)’이 연주되었다. 맑고 푸른 자연의 소리를 풍성한 국악관현악으로 표현한 곡으로, 2011년에 발표된 이후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고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 속 악기들의 평온한 조화로 시작한 음악은, 국악기들의 독자적인 음색을 각각 들려주거나 하나 되어 어우러지며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특히 2장에서 연주된 엇모리 부분은 조원행 작곡가 특유의 마이너틱하게 부딪히는 소리와 코드 진행이 돋보였으며, 가야금과 소금이 새 소리를 흉내 내며 아름다운 자연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어 마치 자연 속에 흠뻑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곡을 통해 정치용 지휘자의 깔끔한 지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박자나 장단이 점점 확장되어 변화하거나 다이내믹을 주어야 할 때 특히 그만의 깔끔한 지시가 도드라졌다. 악단을 군더더기 없는 연주로 리드하여 단정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강한 에너지를 통해, 기존 국악 관현악에서 잘 느끼지 못했던 색다르고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음악의 경우 오랜 기간 인기를 끌어온 곡인 만큼 대중적이고 무난하여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신년을 여는 무대로 적합한 평온하고 따뜻한 무대였다. 두 번째 무대로 ‘‘춘설(春雪)’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하프(Harp)는 클래식 공연에서도 일반적으로 자주 쓰이는 악기기에 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인데, 이번 무대를 통해 국악관현악과 함께 하프 소리를 감상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세계적인 하프 콩쿠르를 석권한 하프 연주자 황세희는 우아한 몸짓과 집중력을 통해 관현악을 아름다운 음색으로 감싸 안았다. ‘춘설’은 황병기 작곡가의 첫 번째 개량 가야금 독주곡으로 17현 가야금의 특색이 잘 표현된 곡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희조 편곡의 가야금 협주곡 ‘춘설’을 2022년 손다혜 작곡가가 재편곡한 곡이 연주되었다. 눈이 오는 이른 봄의 아름다운 마을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듯 정돈된 국악 관현악 연주 위에 얹어진 하프 선율은, 마치 가야금을 연주하듯 줄을 뜯고 튕기는 기법을 사용하여 한국적인 색을 드러내다가도 포근하고 울림 있는 매력을 뽐냈다. 특히 2장의 중중모리 부분에서 하프는 장단을 함께 연주하며 전통적 특색을 확실하게 드러냈고, 점점 더 빨라지면서부터는 마치 가야금 산조의 말발굽 부분처럼 화려하고 기교 있게 연주하여, 독특하고 유려한 색채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홍민웅 작곡가의 위촉 초연곡인 타악 협주곡 ‘파도: 푸른 안개의 춤’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타악기 연주자 연제호·이승호·이유진·김예슬·김인수가 각각 꽹과리·장구·북·징·제금 등을 맡아 협연자로 함께 연주했다. 이 곡은 음악적으로 신선한 시도가 많이 가미된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바로 장단이 주가 되어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파도가 춤추듯 흘러가는 삶과 그 속에 담긴 자유로움을 다섯 가지 타악기 독주와 관현악으로 풀어낸 음악의 초반부에서는, 잔잔하던 물결이 일렁이며 커지는 파도를 오채질굿의 변형 장단으로 표현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굿 장단이었기에 익숙지 않고, 정박과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또 박자가 균등하게 반복되지 않아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자유로운 바다의 이미지가 연상됐다. 타악기 연주자들은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라 그런지 관현악단의 연주와 깔끔하게 잘 어우러졌고, 서로 간의 호흡이 잘 맞아 더욱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정치용 지휘자의 지휘 또한 돋보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박을 깔끔하게 나누고, 모으며 다이내믹과 리듬 변화, 장단의 강세에 초점을 맞추어 곡의 매력을 물씬 드러냈다. 또 과하지 않은 지휘로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 유쾌함과 전문성이 가미된 훌륭한 무대를 꾸려냈다. 2부에서는 ‘팬텀싱어4’에서 3위를 기록한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크레즐(CREZL)’이 협연자로 나서 그룹 대표곡인 ‘나 하나 꽃피어’, ‘홀로 아리랑’ ‘황진이’ 총 세 곡을 국악관현악 편곡으로 선보였다. 대중 친화적인 곡을 노래하고 편안한 토크를 진행하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왔고, 성악, 가요, 뮤지컬, 판소리 분야의 전문 보컬들이 모여 만들어낸 하모니는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여 다채롭고 즐겁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공연 대미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손다혜 작곡의 신년 대표곡 ‘하나의 노래, 애국가’가 장식했다. ‘대한제국 애국가’와 ‘임시정부 애국가’,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 ‘애국가’ 세 곡을 엮어, 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 이 곡은 타악기의 웅장한 사운드 위에 대아쟁과 더블베이스의 낮고 중후한 음색이 입혀져 위엄있게 시작했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대중들에게 그리 익숙지 않은 곡이었지만,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 선율이 차용돼 조금 더 쉽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스네어 드럼과 팀파니 등의 타악기가 활용되어 현재의 애국가로 점점 발전돼 간 부분은 마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이 연상될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며, 아름다웠다. 지루하지 않은 악기와 악장 구성, 다채롭게 변화하는 역동적인 연주는 한민족의 역사가 눈앞에 영화처럼 흐르는 듯했다. 국립극장의 대표 시리즈인 ‘신년 음악회’는 2024년 새해를 맞이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풍성함으로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기존의 국악 관현악을 넘어서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화합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올해 선보일 아름다운 음악들을 기대하며, 희망차고 뜻깊은 해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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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국악신문 사할린동포장학회, 러시아 동포 청소년 장학금 전달(주)국악신문(기미양 대표이사)가 주최하는 사할린동포장학회 장학금 전달식이 25일 국악신문 주필실에서 개최되었다. 수상자는 신마이야 학생과 싸프로노브 안드레이 학생이다.신마이야 학생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1학년으로 사할린 한인 한국어 교육의 선구자 공노원(전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부회장) 선생의 손녀이다. 수상 이유는 2017년부터 사할린과 한국에서 개최되는 사할린아리랑축제와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사할린아리랑'을 지속적으로 알려오고 있다. 싸프로노브 안드레이는 인천연수구 청학중학교 3학년으로 고려인 4세이다. 수상 이유는 5살부터 가라데를 시작하여, 카자흐스탄에서 가라데 유럽 챔피온을 따고 나서 한국에 이주하였다. 2020년 동경에서 열린 세계청소년가라데대회에서 세계 챔피온을 거머쥔 꿈나무이다. 국내 다문화사회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국악신문 사할린동포장학회에 장학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은 다음과 같다. 국악계 장문희(전북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김나영(아리예술단), 유지숙(향두계놀이보존회), 이희춘(진도북춤보존회), 이승한(고판사), 진미애(진미애국악원) 아리랑전승단체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김연갑(아리랑연합회), 한영숙(군포아리랑보존회), 남은혜(공주아리랑보존회), 배경숙(경산아리랑보존회), 곽동현(영남아리랑보존회), 이혜솔/김화숙(왕십리아리랑보존회), 유은서(동두천아리랑보존회), 김희은(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 김길자/김진순/서금옥(정선아리랑보존회), 황효숙(울릉도아리랑보존회),조명숙(안성아리랑보존회) (접수순) 사할린 한인협회 권경석(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장),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이병일(전 사할린한국교육원장) 일반인 김바다, 김한나, 정수현, 김니은, 이이랑, 이도은, 이아리, 노이진, 노아진 만 4세(이이랑)부터 85세까지 동참하여 1만원부터 100만원까지 성금을 보내왔다. 특히,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문경) 이만유 회장과 전 회원들이 마음을 모아 100만원 성금을 보내주었다. (주)국악신문은 국내외 러시아 동포들에게 국악공연 체험, 한복보내기운동, 가훈보내기를 시작하면서 '국악기보내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삼정제빵소 등 여러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동포사회에 '평화의 빵 보내기', 김치보내기, 겨울방한구두 등을 보내 오고 있다. 한편 'KBS이웃집 찰스' 방송 제작팀이 장학증서 수상식을 전 과정을 촬영하였는데, 사할린 4세 신마이야 가족을 중심으로 새해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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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디지털 음원 활용한 창작 공모, 대상 윤제남씨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12월 18일(월) 오후 2시, 국립국악원 예인마루 세미나실에서 국악 디지털 음원의 활용 활성화와 국악 창작의 대중화를 위해 진행한 '2023 국악 디지털 음원 활용 창작 공모전' 시상식을 개최했다. 총 26개 작품이 접수된 이번 공모전은 1천여 명이 참여한 대중평가와 8명의 국악작곡가 및 대학 교수 등의 전문가 평가를 거쳐 최종 10곡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국립국악원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정보원이 후원하는 본 공모전에서는 대상 1명, 우수상 1명, 장려상 8명 총 10명을 시상했다. 대상(국립국악원장상)은 상금 300만원을, 우수상(문화정보원장상)은 상금 100만원을, 장려상은 50만원 상당의 스피커를 부상으로 증정했다. 영예의 대상은 윤제남의 ‘만월프로젝트’로 펑키하고 대중성있는 작품이면서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수상은 김관우의 ‘꼭두!여행을 각시다!’로 전통적인 꼭두각시 선율과 장단을 잘 활용한 현대적인 느낌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이아민의 ‘아침의 나라’, 김지은의 ‘조화’, 조영민의 ‘데고’, 장준선의 ‘거문고 위한 서정시’, 박종흠의 ‘둥당기 타령’, 이해인의 ‘도시모듬국악 1인분’, 김리아의 ‘상명지통’, 정수현의 ‘대취타’ 등이 2023 국악디지털음원 창작 공모전 수상의 영광을 함께했다. 국립국악원 국악디지털음원 활용공모전 수상작품은 국립국악원 누리집(www.gugak.go.kr)에서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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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유지숙, “서도소리는 나의 운명”알록달록한 색으로 갈아입고 있는 가을의 한복판,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유지숙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의 민속악단을 향한 마음, 소리 인생, 작업 방향과 염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어 보았다. 물들어 가는 가을의 풍경과 잘 어울리던 따뜻하고 유쾌한 그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 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다시 한번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바로 민속악단 정기연주회가 있었어요. "꽃신신고 훨훨”이라는 제목으로 삶과 끝에서 마주하는 평안이라는 주제의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또 그 후 지방공연, 기획공연, 상설공연 등의 모든 공연과 단의 살림을 살피느라 아주 바쁜 나날을 보냈어요. 정-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취임으로 인해 예술적으로든, 삶적으로든 변화된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우선 감독직을 수행하다 보니 민속악단을 살펴야 할 일이 많아 외부 활동을 자제하게 되며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어요. 제자를 양성하는 일, 외부 개인 공연, 심사, 강의 등 여러 스케줄이 엉켜 처음엔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을 정리하며, 오히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모든 것을 다 떠안고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려놓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죠. 그리고 그런 일들은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 이전 생활의 패턴과 달라진 것이 아쉽지는 않으세요? A. 아뇨. 생각을 해보니, 전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끝도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소리를 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내거나, 공연하는 등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내는 것이 늘 즐거웠어요. 그렇게 하는 일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일은 점점 늘어났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그게 처음엔 속상하기도 하고 아쉬웠지만, 어느 순간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지금 이 시기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죠. 저는 늘 제게 있어 삶과 행복은 소리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서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겪은 모든 삶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나누어 주고, 소리의 길을 제시하며 안내, 독려해 주는 스승의 역할을 더욱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정- 개인적으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신가요? 선생님께서 만들어 나가고 싶은, 그려내고 싶은 민속악단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A. 우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은 각자의 기량이 굉장히 뛰어난 분들로 이루어진 단체입니다. 이분들이, 최고의 악단에서 개인의 기량을 최고로 뽐낼 수 있도록, 자부심을 갖고 음악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 주고 싶어요. 저도 민속악단에서 30여 년을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준다기보다는, 같이 고민하고, 같이 나누고, 같이 살피며 함께 동행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힘든 일이 오더라도 늘 편안할 수 있는 단체, 그리고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정- 사실 전 이 질문을 드리며 민속악단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면 좋을지 이야기해 주실 거로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단원들을 가장 먼저 마음 깊이 생각하시는 모습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던 제가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의 민속악단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다음으로는 선생님께서 오랜 시간 해 오신 서도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요. 사실 ‘서도소리’ 하면 우리 갈 수 없는 지방의 민요이기에, 무언가 아득하고 애절한 느낌이 들다가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정겨움이 듭니다. ‘서도소리’하면 어떤 감정, 느낌이 드시나요? A. 그냥, 제 운명 같아요. 이런 표현이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너무 좋다. 눈물이 나도록 좋다는 표현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서도소리는 제 삶 그 자체에요. 정- 학부 시절, 서도풍류를 듣고 너무 좋아 연주하고 싶어 몇 없는 음원을 모으고, 악보를 직접 채보해 가며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도 음악은 남도나 경기제처럼 익숙하지 않고 공부하기 더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데요. 서도 소리의 길을 오래 걸어오신 선생님도 이런 부분에서 외로우셨으리라 감히 생각해 봅니다. 돌이켜 보았을 때 서도 소리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A. 기악의 경우 자료가 많지 않고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어려운 점이 아무래도 더 많았을 것 같네요.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노래인데, 여긴 그 지역이 아니고, 우리는 배운 대로, 익힌 대로 노래하고 전승해야 하므로 진짜 그 원형을 찾기 위해 더욱 고민해야 합니다. 소리의 경우 어려운 점은, 서도소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소리가 일반적이지 않으며, 어렵다는 거예요. 특히 가장 어려운 게 ‘요성’입니다. 모든 국악의 기본 바탕은 ‘요성’인데, 서도소리의 요성은 잘게 떨면서도 깊어야 해요. 잘못 떨면 발발성 요성이 되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소리의 맛이 이상해지죠. 또 음을 곡선처럼 흘러내리는 특징이 있는데, 배우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걸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특히 고민이 많이 되어요. 그런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구전심수라고 하죠. 배우는 사람이 선생님의 소리와 혼과 마음까지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그 방법으로 소리가 전승되고 있잖아요. 가장 원시적이지만 가장 정확한, 올곧은 교육, 그리고 마음이 있기에 이 소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정- 선생님께서는 제자 양성에도 꾸준히 힘을 쏟고 계시죠.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어떤 소리꾼이 되었으면 하시나요? 또 무얼 가장 강조하시나요? A. 예전에는, 제자들이 많은 게 참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서도소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소리의 본연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인만큼, 진정한 소리꾼이 되기 위해 온 마음으로 노력하는 학생이 있다면,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가르칠 때 기술적으로는, 서도소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특징적인 떠는 요성, 흘러내리는 곡선의 맛, 시김새 등을 기본적으로 많이 가르치죠. 그리고 그 외에 제가 강조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음악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안 돼요. 우리는 대중 앞에 서서 노래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인데, 거짓이 몸에 배어있다면, 그 음악이 과연 진실할 수 있을까요? 항상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음악을 대하고 삶을 대하길 바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 선생님께서는 맥이 끊어졌던 토속민요를 발굴하여 다듬고, 전승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작업을 계속하고 계시는지, 또한 앞으로도 하실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A. 그럼요. 토속민요는 보물이에요. 토속민요 작업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모르던 소리를 들으면 참 신기하고, 좋고, 모르던 맛을 배우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하죠. 토속민요는 같은 노래인데도 여러 형태로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중 가장 잘 부르신 분의 음악을 기준으로 하여 소리를 다듬고,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하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정형화되어 사람들에게 불리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소리를 오래 하다 보니, 악보만 보아도 꺾거나 흘리는 구간이 어느 순간 바로 알아차려질 때가 있어요. 그걸 바탕으로 토속민요 작업을 했을 때 서도소리가 딱 만들어지면, 마치 죽어있는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꽃을 피운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정-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토속민요 작업은 어렵지만, 그만큼 참 가치 있고 귀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연주와 작곡을 통해 토속민요 작업을 늘 해 보고 싶었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의 길을 잘 알지 못해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데요, 이렇게 소리꾼들이 소리의 길과 결을 찾아내고, 음악가들이 힘을 모아 토속민요 발전을 도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계획 중이신 개인 발표나 음반 계획이 따로 있으신가요? A. 네, 음반의 경우 이달 말에 발매될 예정입니다. 또 앞서 이야기했지만, 기존에 불리던 소리뿐 아닌 안 불리던 소리, 토속민요 작업을 계속 해 나갈 생각이에요. 이젠 제자들도 많이 이어받아서 해 주고 있어 참 기쁩니다. 그리고 무대에서 제 소리만 하기보다는, 자라나는 소리꾼들이 장을 펼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내년에는 ‘서도예인전’이라 하여 소리꾼들을 선발하고,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정- 곧 있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연주회에 관해 이야기 해주세요. A. 이번에 있을 공연은 ‘생생풍류’라는 이름의 기획공연이에요. 100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어렵고, 근본이 되는 민속악 ‘대풍류’, ‘시나위’를 중심으로 구성하여 깊게 감상해 볼 수 있도록 무대를 기획해 보았습니다. 추가로 경기소리풍류, 서도소리풍류도 함께 연주하기에 다양한 우리의 민속음악을 들어볼 좋은 기회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단원들이 아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정- 선생님은 어떤 소리꾼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늘 마음으로 염원해요. 소리를 참 잘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요. 사람들이 평가하는 제가 아닌, 저 자신이 평가하는 제가요. 내가 내 소리에 취하고, 자유자재로 소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실 그 생각도 해요. 내가 정말 소리를 잘하게 될 땐, 목이 안 나오겠구나. 그래도, 소리가 잘 안 나오더라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소리꾼. 그런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서도소리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던 ‘운명’이라는 단어가 인터뷰 내내 마음을 휘감고 떠다녔다. 어쩜 이렇게 소리를 사랑하실 수 있을까. 계절을 맘껏 즐기고, 행복한 삶을 살며 가장 사랑하는 소리를 꾸준히 해 나가고 싶다는, 모든 일에 평안히 마음을 쏟고 싶다는 유지숙 선생님. 따뜻하게 채워진 그 마음과 열정은 앞으로도 우리 곁에 오래도록 아름다운 소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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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 다시 피리를 마주하다: 박범훈 명인갑작스러운 찬 바람으로 계절이 바뀜을 실감하게 되던 11월의 어느 날, 곧 있을 ‘박범훈류 피리산조 연주회: 회향(回向)’ 연주회 준비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계신, 국악계의 원로 박범훈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만났다. 120명의 연주자와 함께 할 이번 공연부터, 피리산조, 배움과 가르침, 전통과 창작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어보았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A. 국악계에 남은 생을 기여하고자 노력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품도 열심히 쓰고, 지휘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요즘은 40여 년 전에 스승(지영희)의 가락을 바탕으로 만들었던 피리산조를 제자들과 함께 연주하며 전승, 보존하는 데에 힘쓰고 기여하고자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나에게 허락되는 데까지, 이렇게 계속 국악계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며 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선생님께선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석좌교수를 맡고 계시죠.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2023년 서울캠퍼스에 개설되었고, 이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신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학과 운영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A. 예. 입학 정원은 15명이었지만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제가 뭘 했다기보다는, 서울의 메이저 대학 안에 국악과를 설립해 주었다는 점에서 동국대 측에 참 고맙죠. 아직 설립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학부 과정 외에도 대학원 석사, 박사, 석박 통합과정까지 모두 만들어져 있어 한국음악과의 앞날이 더욱 기대됩니다. 특히 문화재급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직접 학생들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Q.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불교음악과 맥을 같이 하며 포교를 위하여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 국악과와 비교했을 때 수업 과정 등에 차이가 있나요? A. 큰 차이라기보다는,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에서는 맞춤형 교육을 한다는 데에 분별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공수업에서 학년별로 배워야 할 커리큘럼만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개개인 학생의 역량에 맞추어 가르칠 것을 정한다는 거죠.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상의하고, 흥미나 보완점 등을 찾아 그에 맞춘 전공 수업을 하는 겁니다. 또 가무악을 함께 가르치며 지휘, 무용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합니다. 그러한 맞춤 수업이 이 시대의 전통음악을 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국악계가 더욱 발전하는 큰 초석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맞춤형 수업이라니, 개개인의 역량이 더욱 늘 수밖에 없는 좋은 수업이네요. 학생들의 미래가 함께 기대됩니다. 요즈음 준비 중이신 11월 25일 공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120명이 연주하는 피리의 향연이라는 부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번 공연은 어떤 공연인가요? A.이번 공연은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대학교수부터 연주자, 학생, 취미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제게도 참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네요.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연주하는 문중들이 한데 마음을 모아 한 자리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죠. 떼 피리로 연주하는 겁니다. 프로그램 순서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대의 첫 막은 이 피리산조를 잉태한, 모태가 되는 경기시나위를 연주합니다. 특히 지영희 선생님의 첫 제자인 최경만 선생이 연주함으로 더욱 의미가 있죠. 그 외에도 제가 산조를 만들 때 많이 참고했던 지영희 선생님의 해금산조 연주도 있고, 박범훈류 피리산조에 관해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 중 토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Q. 공연 기획부터 함께함의 목적에 이르기까지 참 뜻깊은 무대가 아닐 수 없네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께서 창시하신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지영희 경기시나위를 모체로 조와 다양한 전조 등을 활용하여 창시한 산조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영희 선생님의 경기시나위와는 차별을 둔 부분, 즉 작곡가, 창시자로서 선생님만의 특수한 주안점을 두고 만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산조를 만든다는 건 산조의 틀, 짜는 기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거죠. 또 악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피리산조의 경우 피리로 불었을 때 특징이 드러나는 산조여야 합니다. 그 가락을 대금이 불어서 더 좋으면 과연 피리산조로써의 매력이 있을까요? 산조는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주자가 만들어야만 값어치가 있습니다. 전 산조를 만들며 피리의 특수 주법이나 특징, 그리고 독창성을 다르게 하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Q. 박범훈류 피리산조에는 경토리가 굉장히 많이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잖아요. 경토리를 산조에 녹여낼 때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셨나요? A. 보통 산조에는 전라도의 남도제가 많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지영희류 해금산조, 지영희제 경기시나위에는 경기제. 즉 경토리의 특징이 특히 강합니다. 경기 시나위에는 경토리와 계면조의 특징이 모두 녹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꺾는 음도 남도제와는 조금 다르고, 계면조라고 해도 너무 심각하거나 애절하지만도 않죠. 또 경토리와 계면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피리의 특징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속음악과의 관계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무속음악에서 피리는 반주에 많이 쓰였습니다. 무녀가 노래할 때 조(key)가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조에 맞추어 반주해야 하기에 관의 변화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제에서 주법이 굉장히 많이 발전했어요. 목튀김, 혀치기 등 특수주법이 아주 다양해졌죠. 피리만의 특징이 생긴 겁니다. 저는 그런 경기제의 특징, 피리의 주법을 제 산조에 다양하게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들어보면 조성의 변화가 많고, 관을 올려잡고 내려 잡으며 주법이 많이 변화하는, 경토리가 도드라지죠. Q. 요즈음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각자의 유파를 만들고 산조를 기본으로 삼아 음악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조를 어떻게 보시나요? 또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A. 젊은 연주자들이 산조에 관심을 두고 만들어 나가는 현상이 참 좋네요. 유파를 짜서 남기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산조의 특징을 확실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악기를 오랫동안 연주하고, 악기의 특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게 중요하죠. 그 악기의 도사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산조의 틀. 즉, 장단, 조성, 시김새 등의 조건을 확실하게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저 즉흥으로 짜서 연주하고 남기기엔 생명력이 없어요. 그렇게 꾸준히 연구하고, 연주하고, 기본적인 특징을 확실히 살린 후에 본인의 독창성이 입혀지면, 오래도록 남는, 인정받는 산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Q. 특히 선생님께선 수많은 창작곡을 오랜 세월 만들어 오신 작곡계의 원로시기에 더더욱 여쭙고 싶던 질문입니다. 전통이든 창작 음악이든, 창작하는 데 있어 어떤 것을 기본적으로 꼭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창작이라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게 아니에요. 유(有)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거지. 음악에 들어있는 게 하나도 없으면 뭐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건 소리로써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항상 작곡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어요. ‘소리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라.’ 그러려면 인풋(input)이 정말 중요합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좋은 곡이 나오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죠. 다양한 음악적 소양과 경험, 고민, 습득이 필요해요. 그렇게 내게 다양한 것들이 축적되면, 음악은 그때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예요. 내가 만들고자 하는 방향을 확실하게 잡고 음악을 만들고 나면, 결국 생명력을 가진 곡이 되어 오래도록 연주될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질문드릴게요. 저도 그렇지만, 다양한 음악이 유입되고 수많은 장르가 뒤섞이며 어디서든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배울 수 있는 시대기에 더욱 이 시대의 전통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악인들이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할 마음가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전통이든, 현대음악이든 간에, 예술을 전공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에요. 미(美)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저는 어느 자리에 있든 내 전공을, 음악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왜? 좋으니까요. 억지로 하는 사람들은 도중에 그만두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음악을 하며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그 고비를 끝까지 넘습니다. 내가 좋아서 한다는 그 마음가짐, 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놓지 않고 전통을 해 나가길 바랍니다. 이 시대의 존경받을 원로로 통하는 박범훈 석좌교수가 전통 예술계에 오랜 시간 이바지하며 높은 평판을 이루어 온 데에는, 음악을, 창작을 전심으로 사랑해 온 꾸준한 세월이 있었다. 11월 25일 펼쳐질 그의 공연 제목은 ‘회향’. 긴 세월 쌓아온 음악을 돌아보며, 그 음악의 뿌리, 근원으로 돌아가 피리를 오롯이 마주한다는 의미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이어온, 그리고 미래를 이을 박범훈류 피리 산조가 들려 줄 우리 음악에 대한 강인함, 사랑, 그리고 굳건함이 벌써 귀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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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지키며 내실을 다지는, 소리꾼 김금미지난 18일 미국 문화예술기관 브루클린음악원(BAM, Brooklyn Academy of Music)에서 초청받은 ‘트로이의 여인들’, 뉴욕 하워드 길만 오페라하우스 공연은 큰 성공을 거뒀다. 어제 서울돈화문국악당 카페에서 소리꾼 김금미 선생을 국악신문 정수현 기자가 만났다.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 피곤할 법도 한데, 인터뷰 내내 소리와 창극에 대한 따뜻하고 열정 가득한 눈빛을 보여주었다. 화제의 작품 '트로이의 여인들'로부터 시작하여 판소리와 창극에 대한 열정, 그리고 앞으로 펼치고자 하는 그녀의 음악세계에 대해 들었다. 정수현 기자= '트로이의 여인들'은 전쟁의 비극에서 소외됐던 평범한 여인들을 주목한 작품으로,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한 이들의 강인함과 용기를 그렸지요. 3천 년 전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우리 고유의 판소리와 만나 세계인의 보편적 공감과 환호를 이끌어낸 것이지요. 이 작품에서 어떤 배역을 맡았나요? 김금미=왕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시대적으로 그 당시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은 흔하진 않았지만, 각본, 각색을 통해 여왕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지요. 여덟 명의 여인들과 여왕의 개인적인 삶을 포함하여, 상황과 환경을 극복해 가는 모습을 그려냈는데, 강인한 여성상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Q.여성이자, 왕이자, 어머니이자 아내인 그 역할은 시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모습이겠지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A. "아무래도 내면의 연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여자이자 왕을 대변해야 하고, 국민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모든 걸 담아야 하기에 신경 쓸 것이 많았지요. 왕도 인간이기에 자식과 남편이 다 죽고 혼자 남았을 때의 슬픔과 힘겨움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마지막 남은 국민들을, 여인들을 지켜내야 했기에 그 감정을 삼켜내고 묵묵히 강해야만 했습니다. 그 배역을 잘 소화해 내기 위해 내면의 연기에 더 집중했습니다. 아들이 죽임을 당했을 때의 처절한 감정을 삼키고 나라를 지켜내야 하기에 꾹꾹 눌러 담는 어머니이자 왕으로서의 모습을 연기할 때에는, 특히 감정적으로 많이 아프고 아렸습니다. 또 연기적인 측면을 넘어 소리에서도 에너지와 힘을 백 퍼센트 쏟아 부어 왕의 역할을 소화하는데 모든 정성을 쏟았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며 연기하는 동시에 통성으로 내지르는 판소리를 부르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게 바로 이 작품의 묘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아마 미국의 대중들에게도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전쟁, 가족, 사랑은 모든 인류가 겪어왔기에, 모두가 아픔을 알고 있기에, 보편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Q.창극은 다양한 감정을 연기해 내는 동시에 통성으로 판소리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 창극이 가진 힘이겠지요? "중국, 일본과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우리 K-MUSIC, 창극” A. "판소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소리의 발성이 큰 힘을 갖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외국에도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의 극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판소리만이 가지고 있는 부르짖는 발성의 에너지는 특별한 것입니다. 일본의 가부키, 중국의 경극이 대표적인 극이라면, 그와 견주었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전통 가·무·악을 모두 활용하는 창극이지요. 창극을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장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극에 전통 판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리가 우직하게 이 극을 받쳐준다는 것이 큰 멋이자 매력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Q.오늘의 창극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국립창극단이 추구하는 창극의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A. "국립창극단 단원으로서, ‘국립다운 국립’이라는 슬로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니다. 이는 바로 ‘전통’ 그 자체인데, 전통은 유지하고 보존하면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재창조라고 하여 전통 예술 분야에서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각색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보존 가치를 충분히 유지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국립창극단의 창극은 예술감독에 따라 추진 방향이 달라지긴 합니다만, 너무 치우치지 않는 것이 핵심이란 사실은 분명합니다. 오직 창작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전통을 확실하게 잡고 융화시키는 것. 그게 바로 세계화에 걸맞는 국립창극단만의 창극 작품으로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창극주의자’라고 해야 되겠네요. 그러면 창극단원으로서의 포부와 계획은 어떠신지요? A. "무엇보다 내실을 다지는게 중요하기에 계속하여 내실강화와 자기관리에 시간을 투자할 예정입니다. 오로지 그것 뿐입니다. 특히 창극은 소리뿐이 아닌 연기나 무용 등 준비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은 장르입니다. 무대인은 무대에서 살아야 하기에 오로지 그 무대만을 위해 집중하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판소리는, 몇 시간이고 빠져들어 할 수 있는, 또 다른 나 자신” Q. 이제 그간의 공력에 대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검색 자료를 보니까 어머니께서는 대표적인 여성국극인이시더군요? 그 어머님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국악과는 친숙했다고 했는데, 판소리가 아닌 전통무용으로 국악에 입문하셨더라고요? A. "1982년 전통 무용으로 국악의 길에 입문하여 임이조 선생님께 살풀이, 승무까지 사사하고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KBS 국악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으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아셨기 때문에 저에게 무용을 먼저 배우게 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무용을 하다가 성창순 선생님께 심청가를 배우기 시작했고, 소리꾼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Q.결과적으로 전통 무용을 한 것이 창극과 판소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체험적인 설명을 부탁드린다면? A. "무용은 소리를 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판소리에는 ‘발림’이 있는데, 나의 판소리 무대를 보시는 많은 분들이 발림할 때의 선이 아름답다고 칭찬을 해 주시곤 합니다. 또한 창극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데, 연기적인 부분을 넘어서 나 스스로가 어떠한 그림을 연출하고 만들어 낼 때에 필요한 몸짓, 동작이 오래 했던 무용의 영향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Q. 판소리를 말씀하셨는데,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완창’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몇 시간 동안 오롯이 소리꾼의 목소리로만 무대를 채우잖아요. 이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것인데, 많은 완창 경험이 있으시더라고요? A. "판소리 이수자로서 심청가는 기본으로 했고, 유성준제 수궁가 완창 무대도 올렸습니다. 그리고 현재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적벽가 완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적벽가는 힘차고 우렁찬 우조 계열이지요. 적벽가를 완창 해 내는 것이 소리꾼으로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준 높고 까다로운 소리이지요. 소리꾼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해 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리는, 내가 몇 시간이고 앉아서 할 수 있고, 언제든 빠져들 수 있는 나만의 작업입니다. 재미와 즐거움을 넘어 모든 희로애락을 담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나’라고나 할까요?” Q.현재까지 많은 국악 창작곡이 나왔지요. 또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판소리도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며 그런 작품이 나오고 있다고 봅니다. 앞에서 확신에 찬 판소리에 대한 애기를 들었습니다만, 다시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판소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A. "어떤 작품이 되었든 본질을 잘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본질만 잘 갖추고 있어도 창작, 각색 등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본질이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댐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물이 넘치지 않고 흘러야 할 때 흐를 수 있듯이, 소리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현재까지 무대에 서고 있고, 앞으로도 서고 싶은 사람인데, 만일 내가 판소리의 본질을 잊고, 우직하게 정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의 나는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도와 아이디어는 언제든 생겨난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의 본질. 우리 판소리의 정통성을 어떻게 가져 가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국악, 과거, 현재, 미래의 또 다른 김금미" Q.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낍니다만, 개인적인 포부나 목표를 물어도, 판소리와 창극이 더 많이 발전하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강하게 피력하시니 다른 소소한 질문을 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리와 창극, 더 나아가 국악은 김선생님에게 분명한 "또 다른 김금미”임에 분명하네요. 여독도 다 풀지 못한 상황에서 귀한얘기 전해주어 감사합니다. 더 하실 말씀이~ . A. "예, 앞으로 창극이 지금보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판소리가 교육적 부분에서도 대중적 부분에서도 더 많이 듣고 감상할 기회가 생겼으면 합니다. 국민들이 어릴 때부터 성장하고 나서까지 국악, 판소리를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대한민국 하면 판소리’ 라는 슬로건까지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날을 위해, 무대에서 소리꾼으로서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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